불평등한 사회 일그러진 인간 군상… 김경욱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입력 2011-09-30 17:49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인간과 사회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온 소설가 김경욱(40)의 여섯 번째 소설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창비)는 전작들에 비해 훨씬 건조하고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표제작은 하드보일드한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때는 어느 도시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12월, 수백 개의 수도계량기가 동파된 월요일 아침이다. 부동산중개소에 걸려 있던 아파트 단지 상세도와 그 아파트 관리사무소 서랍에 있던 입주민 주차스티커 발급대장, 그리고 인근 초등학교 교무실에 보관되어 있던 학생 신상카드가 동시 다발적으로 없어진다. 누군가 훔쳐간 것이다.
장면은 바뀌어 초등학생 손녀와 재개발지역에서 단둘이 살아가는 사내가 등장한다. “사내가 계집애의 눈앞에 카드를 한 장씩 내밀었다. A4용지 크기의 빳빳한 카드 한 귀퉁이에는 증명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내는 계집애의 눈동자를 유심히 살폈다. 동공이 커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15쪽)
손녀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말을 잃었다. 학교장은 끝내 가해 학생들을 알려주지 않고 오히려 사내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형제님, 원수를 사랑하라는 거룩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어린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모르고 행한 일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뭐라 하셨습니까? 주여, 용서하소서.”(21쪽)
사내는 교장에게 등을 돌리며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저 바리새인을 용서하시더라도 저놈의 더러운 주둥이는 용서치 마소서. 저자는 제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22쪽)
이미 가스가 끊기고 곧 전기와 수도마저 끊길 막막한 상황이지만, 사내는 보상금을 거부하고 가해자 부모들이 소유한 차량 3대에 불을 지른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복수에 있지 않다. 사내의 치졸한(?) 복수는 그를 둘러싼 완강한 현실에 어떤 의미 있는 타격도 가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다만 손녀와 함께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뿐이다.
취업 사수생 과외교사인 주인공과 압구정동 고등학생 커플의 한강변 데이트를 그린 수록작 ‘러닝 맨’은 아예 사회적 계층의 문제가 이야기의 핵심으로 부각된다. 한강변에서 수차례 마주치는 ‘뱀 문신을 한 사내’와 누렁개를 쇠줄에 묶어 끌고 가는 오토바이 사내 등이 부녀자 납치강도사건에 대한 소문과 병치되면서 막연한 불안과 긴장감을 던져주지만 정작 작가의 강조점은 다른 데 있다.
“강 건너에는 찍어낸 듯 엇비슷한 아파트가 성벽처럼 죽 늘어서 있었다. 그것은 난공의 요새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강은 성벽으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해자일 테지. 저 깊고 넓은 해자 건너, 저 단단하고 높은 성벽 너머에 은재의 집이 있다.”(52쪽)
강남 부유층의 주거지가 도시 속 ‘난공의 요새’로 묘사되는 가운데 성벽 바깥에서 그곳을 쳐다보는 주인공의 심리는 성벽 안으로 절대 진입할 수 없는 외부의 잠재적 범죄자처럼 위축되고 만다.
또 다른 수록작 ‘99%’는 1%의 상류층을 향한 우리의 속물적 욕망을 보여준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최대리는 어느 날 스카우트되어온 미국 유학파 스티브 킴에게 위기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그럴수록 최대리는 스티브 킴이 고교 시절 자신을 전학 간 학교에서 2등의 자리로 끌어내렸던 김태만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사로잡힌다. “반에서 유일하게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니던 태만, 보기에도 아까운 고가의 신발 한짝 뒤축을 꺾고 다니던 태만의 짝발을 어떻게 잊겠는가. 태만도 왼발이 오른발보다 컸다. 그러고 보니 그도 태만처럼 왼손잡이였다. 갑자기 속이 메스껍더니 손에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방망이질했다.”(89쪽)
소설은 그럴듯한 증거를 조금씩 흘리며 독자로 하여금 스티브 킴의 정체를 궁금하게 만들지만, 종국에는 스티브 킴이 김태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도록 열려 있다. 이처럼 열린 구조와 미스터리한 장치를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의 시선을 이중 삼중으로 펼쳐 보이는 기법이야말로 김경욱 소설의 가장 두드러진 점이다. 김경욱 소설은 이야기의 핵심적인 지점마저 부러 절제하고 생략하고 비워놓음으로써 더 많은 의미로 스스로를 열어놓는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