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교회를 도웁시다-국민일보·세복협 공동캠페인] 시각장애인교회 서울 삼성교회

입력 2011-09-30 17:33


“빚더미 고통에 희망의 빛이 안보여요”

“너무 힘드네요. 시각장애인 교회라 더 힘든 것 같아요.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 신길6동 삼성교회 김광환(63·시각장애인 1급) 목사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힘든 개척교회 목회 생활이 서러운 듯했다. 김 목사는 1999년 10월 이 교회를 개척했다. 신길1동에서 월세로 9년간 교회를 유지하다 2008년 2월 보라매 전철역 5번 출구 앞 상가 지하 1층에 396.69㎡(120평) 규모를 9억원에 분양받았다. 시각장애인들이 쉽게 찾아 올 수 있어 위치가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목사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은행에서 5억원 대출받은 것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매달 280만원의 이자 부담이 어깨를 짓눌렀다.

40여명 교인의 헌금으론 감당하기 힘들었다. 최근 불어 닥친 경제 불황으로 주로 안마업을 하는 시각장애 교인들의 수입이 감소한 것도 한몫했다. 빚에 허덕이다 보니 교인 수도 30%나 줄었다.

“안마업을 하는 교인 중 3분의 2 정도는 문을 닫은 것 같습니다. 실직을 한 셈이지요. 버는 사람이 얼마 안 되다 보니 교회 운영도 어렵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희망을 기대할 뿐입니다. 시각장애인 동료 목회자들도 이런 상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잘 견뎌내야 할 텐데….”

대출이자 280만원 중 200만원 정도는 헌금으로 충당한다. 하지만 매달 80만원 정도가 모자란다. 다행히 예배 때 피아노 반주를 하는 김 목사의 아들이 최근 회사에 취직해 나머지 돈을 대고 있다. 김 목사의 사례비는 없을 때가 많다.

김 목사는 한 살 무렵 두 눈을 실명했다. 48년 겨울 서울 종로6가에 살던 집이 불이 나는 바람에 심한 경기를 일으켰던 것이다. 불 속에서 엄마를 애타게 찾다 두 눈을 잃고 말았다.

6·25전쟁 때 그는 살아남았다. 숨어 있던 집 안의 방공호가 비행기 폭격으로 무너졌지만 그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후 사춘기를 거치며 다른 사람과 다른 모습에 실망을 했지만 친구의 인도로 교회에 다니며 인생을 새롭게 보게 됐다. 21세 때 폐결핵을 진단받고 투병을 했지만 그의 신앙은 깊어만 갔다.

결국 그는 27세 나이에 서울장신대 목회학과에 들어갔다. 신학대학원도 졸업했다. 82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서울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81년 서울 한강로 1가 시각장애인이 다니는 애능중앙교회를 개척, 18년 동안 섬기며 150여명의 교인으로 성장시키기도 했다.

삼성교회 교인들은 안마와 침술 봉사로 양로원 등 지역 주민을 찾아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79년 11월 연애 결혼한 이문옥(58) 사모가 김 목사의 눈 역할을 대신 해 주고 있다. 교회 주방일과 청소, 점역, 교인 심부름 등 모두 이 사모의 몫이다.

김 목사는 인터뷰 말미에 ‘하늘가는 밝은 길이’ 찬송을 톱 연주로 들려주었다. 앞으로 시각장애인 합주단을 만들어 찬양집회를 다니는 게 작은 소망이란다.

“앞으로 3∼4년 잘 견디면 삼성교회도 훌륭한 시각장애인 교회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잘 견딜 겁니다.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어려운 교회들은 청원서, 교회(자기)소개서와 기타 서류를 제출하면 이를 취재해 보도하고 후원자들의 명단은 지면에 소개됩니다.

◇성금자 명단 (단위:원)

△강철성 20만△정지숙 20만△전은숙 20만 △김태명 권중석 나손 이동진 김옥임 각 10만 △김만희 김은실 안정란 김정수 허 훈 이규성 박광식 교회후원 각 5만 △서정선 손인철 강정숙 김덕자 강경자 각 3만 △조기일 최순영 김윤희 각 2만 △이복열 1만

◇후원금 접수

국민은행 538801-01-295703(예금주 한영훈-세복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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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및 서류접수

세계복음화협의회(02-2608-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