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에필로그] 베드로가 되게 하는 영화 ‘도가니’
입력 2011-09-30 17:35
영화 ‘도가니’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납니다. “우리들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길 기도할게요.”
‘도가니’는 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성추행·성폭행 사건을 다뤘습니다. 한데 관객은 거대악이 이기는 과정을 ‘분노의 도가니’가 되어 지켜봐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여주인공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30일, 저와 같은 시간에 ‘도가니’를 봤던 관객 누구도 분노와 그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뒤섞여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그 악행이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호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성전 안 장사치를 향해 의자를 들어 엎으신 예수의 ‘폭력’(마 21:12)이 그 상황에서 가해질 것 같았습니다.
크리스천에게 ‘도가니’는 너무나 불편한 영화입니다. 크리스천 관객이라면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 교회 안에서 충성하는 직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성폭행이 이뤄지는 ‘자애학교’ 교장실 벽엔 십자가 그리고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요삼 1:2)로 시작되는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가해자 양복에 금색 십자가 배지가 두드러집니다.
그 가해 직분자가 구속됐을 때 성도들은 그를 옹호하는 성경 구절이 담긴 피켓을 들고 찬송을 부릅니다. 법정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도가니’의 엔딩이 올라가고 삼삼오오 극장을 나갈 때 오가는 말이 예상되시리라고 봅니다. 그들에게 외치고 싶어집니다.
“아니오. 영화 속 그들은 크리스천이 아니오. 크리스천의 선함 속에 파고든 위장 크리스천일 뿐이오. 전관예우를 즐기던 변호사, 높은 자리를 위해 영혼을 팔던 검사와 같은 비열한 악령일 뿐이오.”
불편한 진실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주인공의 마지막 멘트가 희망으로 남습니다.
“기도할게요.”
(전정희 종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