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성 면죄부’ 논란] 鄕判의 힘… “같은 법원 후배가 유죄판결 내리겠나”

입력 2011-09-29 18:28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에 대한 무죄판결을 놓고 지역 법조계는 ‘향판의 벽’이 그만큼 두텁고 높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한솥밥을 먹은 선배에게 엄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판사 출신의 김모(62) 변호사는 29일 “재판 중에서 가장 무서운 재판이 ‘여론재판’이라고 하지만 이번 판결을 통해 향판의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며 “유죄판결을 당초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주 모 법률사무소 김왕철(49·가명) 사무장은 “광주지법 관내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해온 전형적 향판인 선 부장판사에게 후배 법관들이 유죄를 선고하기가 심정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라며 “위계질서가 확실한 법관들의 생리상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선 부장판사가 몸을 담았던 광주지법에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지 않은 검찰의 안일한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광주지방변호사회는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공판과정을 볼 때 무죄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며 “비판적 국민여론에만 기대어 범죄행위에 대한 실제적 입증은 소홀히 한 채 무리한 기소를 한 검찰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지부 측은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기소한 선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부실한 공소내용도 한 몫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더욱이 검찰은 선 부장판사가 근무한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는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관할이전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광주지검은 긴급회의를 갖고 선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을 정밀 검토한 뒤 1주일 안에 ‘항소’ 절차를 밟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정찬우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뇌물수수 혐의는 증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법리적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재판부가 명백한 변호사법 위반까지 무죄를 선고한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말했다. 정 차장검사는 “파산부의 재판장이 법정관리 중인 기업체 관계자를 직접 불러 특정 변호사를 찾아가보라고 소개한 것은 변호사법에 형사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청구한 영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기각돼 수사에 방해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선 부장판사의 부적절한 법정관리 업무가 도마 위에 오른 3월 중순부터 당사자와 친구인 강모(50) 변호사의 은행계좌와 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수차례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관련자들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데다 압수수색의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대부분 기각했다가 추후 일부만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 관계자는 “1심 선고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하지만 항소심 재판에 가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1심 재판은 결국 검찰의 ‘판정패’로 일단락됐으나 향후 2·3심 재판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의 더욱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1심 재판장이 선 부장판사보다 후배여서 판결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며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기 위해 수사진을 대폭 보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선 부장판사에 대한 동정론도 나왔다. 김모(48) 변호사는 “검찰은 친구인 강 변호사의 투자 권유를 넓은 의미의 뇌물로 간주했으나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며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판사로서 자존심에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만큼 선 부장판사는 이미 처벌을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조운식(55) 변호사는 “판사는 신의 권한을 위임받은 성스런 존재로 여겨져야 한다”고 전제한 뒤 “법률과 양심에 따라 명쾌한 판결을 내려야 될 선 부장판사가 불행하게도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