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에 숨은 과학’을 알아야 지갑이 열린다
입력 2011-09-29 17:32
쇼핑의 과학/파코 언더힐/세종서적
서점과 화장품 매장 손님이 입구부터 바구니를 드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의 목표는 책 한 권이거나 립스틱 하나. 대개 한 권이 두세 권으로, 립스틱은 에센스와 영양크림으로 불어나지만 말이다. 쇼핑의 과학이 개입하는 게 그 순간이다. 립스틱을 왼손에 든 손님이 맘에 드는 ‘신상’ 크림을 발견하고 ‘바구니가 없을까’ 두리번거릴 때 눈앞에 바구니가 쌓여 있다면 매출은 오르게 된다.
소매 매장에서 가장 좋은 판매 위치는 입구 바로 앞일까. 쇼핑 전문가들은 입구를 쇼핑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막 매장에 들어선 쇼퍼에게는 몇 초간의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광고전단이나 선반은 입구에서 몇m 안쪽에 배치해야 한다. 일종의 ‘이동지대’이다.
남성 소비자는 여성보다 매장통로에서 빨리 이동한다. 구경 시간도 짧고 직원이 권한 상품을 구매할 확률도 높다. 한번 입어본 옷을 사는 비율은 남자가 65%, 여자는 25%에 불과했다. 교훈은? 남성복 매장의 탈의실이 가까우면 매출은 높아진다. 쇼핑의 세계에서 남성은 비주류지만, 지갑을 열기는 한결 쉽다. 딸의 드레스 가격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와 함께 쇼핑할 때 비싸진다.
‘여성+남성’ 쇼핑객은 최악의 조합이다. 매장 체류시간은 4분41초로, ‘여성+여성’(8분15초) ‘여성+자녀’(7분19초) ‘여성 고객 혼자’(5분2초)보다 확연히 짧다. 짜증내는 남편 때문에 아내의 쇼핑이 짧아진다는 얘기다. 매장 구석에 스포츠전문채널을 볼 공간을 마련하면 보채는 남편을 달랠 수 있다. 부엌용품 매장이라면 맥주잔이나 바텐더용 포도주잔, 코르크 따개 등이, 가구 매장에서는 가구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나 단면도, 조립도 등이 유용하다. 아내가 스타일에 몰두한 사이, 남편은 목공기술 같은 전문영역을 살핀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저자 파코 언더힐은 전 세계 상위 50대 소매업체 중 절반을 위해 판매의 전략을 짜온 ‘쇼핑의 과학’ 창시자다. 매장에 조사원을 파견해 쇼핑객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언제 나타나 어떤 제품 앞에서 몇 초간 머물며, 가격표를 몇 차례 확인하고 어떤 경로를 통해 무엇을 사들고 언제 매장을 떠나는지를 현장 조사해 매장 운영에 반영해왔다. 지난 20여년간 100만시간 이상의 비디오 촬영 테이프와 몇t 분량의 설문조사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1999년 초판을 내고 10년 뒤 개정판이 나왔으니 경제경영 분야 실용서 중 드물게 장수한 셈이다.
이 노고 덕에 가게 주인들은 개껌 같은 애완견용 간식거리를 어느 높이의 선반에 놓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정답은 손이 쉽게 닿는 낮은 선반이다. 애완견의 주식은 성인 소비자가, 간식거리는 어린이나 노인이 사기 때문이란다. 쇼핑의 과학이라기보다 판매의 과학인데, 내가 마트에서 한 일을 다 알고 있다니, 조금 섬뜩한 느낌이다. 신현승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