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철희 (5) 주님이 선물한 300달러 짜리 ‘기도로 가는 차’
입력 2011-09-29 21:26
미국에서 차 없이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유학 시절 중고차 한 대를 사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어느 날 함께 공부하던 한 유학생이 꿈 얘기를 했다.
“형님, 어제 형님이 300달러짜리 차를 사는 꿈을 꾸었어요. 파란색 차였어요.” “300달러짜리? 야 그런 차가 어디 있겠노?” 나는 그냥 웃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다른 유학생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님, 차를 구하고 계시죠?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이 있는데 차를 판다고 합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350달러라고 했다. 그것도 파란색이란다. “여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차인가 봐요.” 아내가 끼어들면서 구입하자고 했다. 대신 300달러에 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우린 그 차를 사게 됐다. 집에 끌고 온 차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고물이었다. 처음 본 순간 거대한 탱크 같다고 느꼈다. 13년 된 파란색 8기통 ‘플리모스’라는 차였다. 주행거리를 알리는 계기판은 몇 번이나 돌아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버펄로의 잦은 눈 때문에 뿌리는 염화칼슘으로 차 하부 쪽은 삭아서 너덜거렸다.
‘빠데 붙인다’는 말이 있다. 차 몸통의 구멍 난 부분을 다른 천이나 철판 조각으로 땜질을 하고 그 위에 덧칠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차는 한두 번 덧칠한 게 아니라 몇 번씩 덧바르고 칠한 것 같았다.
어느 날 청소하려고 운전석 아래 발판을 걷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먹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두 개나 뻥 뚫려 있었고 땅바닥이 훤히 보였다. 차를 타고 가면 옆에 가던 차들은 행여나 부딪칠까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신호 대기를 위해 차를 멈추면 시동 꺼지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뒤에 오던 차가 빵빵거리면 뒷자리에 앉은 두 아들은 기도한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듯 신기하게 다시 시동이 걸리곤 했다. 사람들은 그 차를 ‘기도로 가는 차’라 불렀다. 그래도 유용했다. 어려운 유학생들을 위해 공항, 마켓, 교회, 학교로 많이 실어 날라 주었던 고마운 차였다.
학업을 마친 1983년 잠시 로스앤젤레스에 살 때다. 내 차를 물려받아 쓰고 있던 제주도 출신 유학생이 전화를 했다. “형님, 200달러를 보내겠습니다.” “웬 200달러?” 그의 말은 어느 날 다른 차가 와서 상가 앞에 세워둔 자기 차를 받았다는 것이다. 수리비로 400달러를 받았는데 수리할 가치도 없는 차니 절반은 우리에게 보내주겠다는 거였다.
“정말 고마운 차네. 돈까지 벌어 주고.” 나는 후배에게 200달러는 교회에 차량 헌금으로 드리라고 부탁했다.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 준 그 차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세상 어떤 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그 고물 차에는 비교할 수 없었다.
버펄로에서 우리는 개척교회를 다녔다. 내가 은혜 받을 때 깨달은 복음은 수학 공식보다 더 확실하고 명료했다. 기도하면 즉시 응답해 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었다.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났다. 누구에게든 이 확실한 하나님의 존재와 명료한 복음을 전해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가 됐다. 사람들과 무슨 대화를 하든 결국에는 예수님 이야기로 돌아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찌나 전도를 열심히 했던지 학교 도서관에 들어오면 슬그머니 달아나는 학생도 있었다.
당시 개척교회에 동참하면서 전도한 사람들 중에는 지금 큰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도 계시고 장로님도 여러 분 계신다. 하나님은 그런 대어(?)들을 낚게 하셨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