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당 개념 제안한 박종화 WCC한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입력 2011-09-29 19:49


[미션라이프] 지난 27일부터 열리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 준비위원회(Assembly Planning Committee) 회의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국적 공동체의 개념인 ‘마당’이 도입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평화 여성 인권 통일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에큐메니컬 논의 공간을 의미한다.

WCC 본부는 그동안 짐바브웨 하라레 총회(1998년)에서 ‘파다레’라는 이름으로,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레 총회(2006년)에선 ‘무티라오’라는 이름아래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40여명의 위원들에게 마당과 평화열차, 평화협정 등 한국적 콘텐츠를 제시한 박종화 서울 경동교회 목사를 29일 부산 벡스코에서 만나 마당의 개념과 한국교회 준비 사항에 대해 들어봤다. WCC 중앙위원을 10년간 역임한 그는 현재 한국준비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이자 국제관계 총괄을 맡고 있다.

-마당이 WCC 총회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마당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집 앞 정원도 마당이며, 문화공연도 마당이다. 토론하는 곳, 시장도 마당이다. 한국적 의미에서 마당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여러 사람이 만나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합의를 이뤄내는 공간을 의미한다. WCC 총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치 문화 종교 예배 등 다양한 주제를 갖는 마당을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고 본다.”

-마당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일례로 원자력 발전이나 가정, 결혼, 평화, 신학 등 전 세계 삶의 이슈들을 다룬다. 부산 벡스코 앞 공간에 300~350개 부스를 설치한다. 공터에서 마당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당이 공간에 제약을 받는 건 아니다. WCC 총회 기간 동안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등 전국 교회에서 각자의 마당을 설치할 수 있다. 이번에 총회 기간 중 새벽기도를 드리기로 했는데 기도마당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총회 기간 중 부산의 몇 군데 교회를 선택해 WCC가 직접 테마가 있는 새벽기도회를 인도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새벽마당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도 마당의 개념이 나온다고 발표했는데.

“마당은 신학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사도바울이 신학 논쟁을 벌인 곳이 아고라다. 헤라문화권에서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곳이 바실리카라는 곳이다. 모두 마당의 개념이다.”

-그럼 앞으로 WCC 모임 때마다 마당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쓰이는 것인가.

“마당은 이전 총회의 단어보다 발음이 훨씬 쉽고 포괄적인 뜻을 담고 있다. 열린 공간으로서의 마당은 지난해 11월 그리스에서 열린 제1차 총회 준비위원회에서 제안된 것으로 이번 회의에서 채택됐다. 다양성 속에 합의를 이루는 것으로 이제 용어를 신학화 했다고 보면 된다. 마당은 2020년 총회 전까지 7년간 세계교회의 흐름을 주도하는 용어가 될 수 있다.”

-이번 준비위원회에 참석하고 보니 WCC 한국준비위원회 출범과정에서 발생한 논쟁이 소모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당신의 직함이 무엇이며, 자국 내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직급과 국적의 개념은 없어지고 콘텐츠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만약 영어 회화가 불가능하고 자신이 생각을 내놓지 못하는 인사가 참여한다면 시간만 허비할 것 같다는 우려감마저 들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소모적인 논쟁을 벌인 것은 결국 WCC의 정신이나 회의 구조를 잘 몰랐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주제 발표 후 장시간 토의하는 회의구조를 봤지 않나. 어쩔 수 없다. WCC 논의구조는 사람중심으로 가게 돼 있다. 여기엔 직급이고 자리고 의미가 없어진다. 열린 토론이 돼야 한다. 사안별, 내용별 준비 없이 가면 그냥 앉아 있다가 끝난다. 여성 청년 평신도 신학자 등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 있지만 실제 흐름은 전문가가 이끌고 간다. 이들은 신학적 수준을 갖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통역 없이 실무자를 만나 자유롭게 의견교환이 가능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가능할까. 이 고민 앞에 NCCK고 비NCCK고 의미가 없어진다. 우린 그동안 거죽만 가지고 싸웠다.”

-실제적인 일보다 자리를 중요시하는 건 한국의 유교 문화 때문은 아닐까.

“맞다. 유교문화의 폐단이다. 우리는 실제적 일보다 자리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건 국제사회의 정서와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일례로 상당한 지위에 있던 분을 한국준비위원회에 영입했는데 처음엔 보조(assistant)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불쾌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게 오해였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위계질서가 있는 회의가 아닌 열린 구조 속에서 풀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의구조 안으로 들어와 일을 해보니 수평적 구조에서 본부 감독의 조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분이 기쁘게 참여하고 있다. 외국에는 대학 총장급도 조감독, 부감독을 맡을 정도다. 한국교회는 조직을 짜는 디자인에는 강할지 몰라도 내용을 채우는 콘텐츠가 약하다. 디자인만 갖고 싸웠던 것이다. 거죽만 바라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준비위원회 출범과정에서 나왔던 일부 불협화음이 해소 된 건가.

“지금은 괜찮지만 전에처럼 계속 자리를 놓고 삐거덕 거렸다면 우리가 WCC 총회에서 손님접대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지금 WCC의 입장은 한국에 많은 부분을 위임하겠다는 입장이다. WCC 본부가 기다리고 있다. WCC 총대들을 잘 맞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어떻게 한국교회의 가치를 집어넣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여전히 조직 구성에 문제 삼는 인사가 나오면 어떻게 되나.

“이제 문제제기를 해봐야 소용없다. 총회 준비라는 거대한 기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것은 정말 WCC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하는 얘기다. 회의에 한 번도 참석해보지 않고 그렇게 가십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총회를 개최하는 대의를 찾아야지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그런 인사가 나온다면 한마디로 난센스다.”

-WCC 총회 개최 후 한국교회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엄청나게 변화될 것이다. 어찌 보면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와 처음 연결되는 혁명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엔 에큐메니컬 엘리트들이 이 일을 했다. 회의에 참석하고 한국에 돌아와 보고했지만 현장교회는 그걸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2013년은 상황이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전세계 에큐메니컬 인사들이 한국교회를 직접 찾아와 만난다. 쉽게 말해 세계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교회에 보여주지 않았던 한국교회의 모습을 자동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무엇보다 해외 대표가 와서 한국의 선교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낼 가능성이 있다. 칭찬도 있겠지만 선교사들이 언어도 익히지 않고 소영웅주의에 빠져 행동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할 수 있다.”

-한국교회 목회자와 청년 등 WCC 총회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이 많다.

“총회기간 중 200개 이상의 성경공부 모임이 진행된다. 뜻이 있는 목회자들은 여기에 동참할 수 있다. 또 총회를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자원봉사자가 1000명 정도는 필요할 것으로 본다. 영어는 물론 에큐메니컬 언어도 알고 있어야 한다. WCC 홈페이지에서 준비문서를 살펴보고 NCCK 에큐메니컬 신학강좌를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총회 참관은 등록만 하면 누구나 가능할 것이다.”

부산=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