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넘은 ‘영혼의 선율’… 기적을 연주하다
입력 2011-09-28 21:11
28일 오후 3시30분 인천 구월동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징이 울리자 시각장애 연주자들이 한 손에는 악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무대로 올라왔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거나 1m 앞 정도를 흐릿하게 감지할 수 있는 인천 혜광학교 학생 120여명은 일반 오케스트라처럼 능숙하게 각자의 악기를 조율하며 연주를 준비했다. 이윽고 지휘자의 신호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려 퍼지자 객석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홍난파 ‘고향의 봄’을 끝으로 1시간20분간 펼쳐진 연주회 동안 객석은 감동의 물결로 가득 찼다. 열렬한 환호 속에 앙코르곡이 연주될 때는 대다수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
악보를 볼 수 없어 점자 악보를 통째로 외워야 했던 학생들의 고충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지난 1월부터 9개월 동안 합주 연습을 해왔다. 학생들은 악기를 직접 본 적도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악보를 외워 악기를 연주하고 화음을 맞춰 멋진 무대를 선사하니 기쁨이 넘칩니다.” 학부모들이 입을 모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의 현악기 연주를 듣기 어려운 상황에서 바이올린 1번 주자 공욱(15·중3)군 등 시각장애인 35명이 현악기의 음색을 마음껏 뽐냈다.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연주 초반 긴장한 빛이 역력했던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배어나왔다.
차이콥스키곡 백조의 호수 중 정경이 울려 퍼지자 객석은 또 한번 아름다운 하모니로 물결쳤다. 무대에 오를 때와 퇴장할 때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도움을 받았지만 연주를 하는 순간만큼은 장애인이 아니었다.
플루트와 피아노 연주에 맞춰 휠체어를 탄 장애인 합창단 30여명이 찬조 출연해 가스펠곡으로 영혼을 찬양하는 순서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관악기 연주로 ‘도레미송’이 울려 퍼지자 객석에서는 박자에 맞춰 박수가 계속 터져 나왔다. 평소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서 학생들에게 들려주던 그 곡이었다.
학생들은 이 무대를 위해 오랜 기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학생들과 교직원은 국민일보사가 주최한 2010년 10월 유엔의 날 장애인대축제를 계기로 인천국제공항공사, ㈜이건창호, 한국GM 등으로부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지원받아 오케스트라 창단을 추진했다. 이경구 인천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등 전문 음악인들도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이날 창단연주회에는 박범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및 국민소통위원회 관계자들과 투비아 이스라엘 라이 이스라엘 대사 등 5개국 주한외교사절 등 1300여명이 참석했다.
명선목 교장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인천을 찾는 세계인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