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치 요동치니… 기업 ‘외화대출’ 급증
입력 2011-09-28 21:35
세계경제 불안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기업들의 외화대출이 늘고 있다. 불안한 경제·금융환경에서 달러화나 엔화 등 외화유동성을 미리 확보해 놓겠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외화를 확보해야 하는 은행과의 신경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28일 국민일보가 산업, 외환, 하나, 기업, 신한, 우리, 국민 등 7개 주요 은행의 3분기 외화대출 잔액 추이를 분석한 결과 올 6월 말 322억4600만 달러에서 지난 23일 346억3300만 달러(외환은행은 26일 기준)로 23억8700만 달러(7.4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분기 대비 2분기 증가분 5억5000만 달러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은행별로는 산업은행이 올 6월 말 145억100만 달러에서 지난 23일 157억700만 달러로 12억600만 달러 증가해 가장 높은 증가폭을 보였다. 이어 외환은행 5억4900만 달러(27억6100만→33억1000만 달러), 하나은행 4억8800만 달러(27억9100만→32억7900만 달러), 기업은행 2억3100만 달러(37억5900만→39억9000만 달러), 신한은행 1억300만 달러(29억200만→30억500만 달러), 우리은행 7400만 달러(29억700만→29억8100만 달러) 등 순이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은 2억6400만 달러 감소했지만 이는 7∼8월 외화대출 만기인 일부 대기업이 대규모 자금을 상환했기 때문이다.
상반기 외화대출 증가세가 주춤했던 것은 원화 강세와 시중은행들의 외화대출 취급 요건 강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의 외화대출은 결제자금, 시설자금 등 해외 실수요 자금이 아니면 대출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원화 환율이 요동치자 외화대출 자금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국 정부가 내놓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대책이 시장에 실망을 줘 향후 원화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도 외화대출 증가에 영향을 줬다.
전문가들은 외화대출 가수요 발생 가능성도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연구위원은 “하반기 세계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해외 투자를 늘리기란 불가능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외화대출 잔액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향후 외화유동성 경색을 대비한 수요가 발생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은 지금의 외화대출 증가세가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실수요가 아니면 대출이 불가능한 만큼 외화대출이 대폭 증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럽의 재정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경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유럽계 자금이 일시에 일탈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외화대출 증가는 외화유동성 안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외화유동성 확보를 강조하면서도 중소기업의 실수요 외화대출은 지속적으로 진행하라고 지시해 난감하다”며 “결국 가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대출심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