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 태산이는 장애인 안내 열공중!

입력 2011-09-28 18:16


‘저는 안내견 공부 중입니다.’ 노란 조끼를 입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개. 장애인 보조견이란 명찰도 달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목동 제자교회에서 퍼피워킹 과정에 있는 ‘태산이’를 만났다. 퍼피워킹은 시각장애인 안내견(이하 안내견) 후보 강아지에게 사회적응훈련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훈련시키는 이들은 퍼피워커로 불린다. 퍼피워커는 생후 6, 7주된 안내견 후보 강아지와 1년간 함께 지내며 사람들과 친해지도록 훈련시킨다. 100%가 일반인 자원봉사자다. 이날 만난 퍼피워커 김의경(49·집사)씨 가족은 기독교를 믿는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이 될지도 모를 태산이와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를 찾았다.

“태산이는 주일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어요.”

아직 안내견 훈련을 받지 않은 태산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관심을 보였다. 김씨는 연방 주먹을 쥐고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안돼. 기다려”라고 지시했다.

만남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던 김씨의 둘째딸 조성민(15·고1)양은 지난해 여름 인터넷을 검색하다 퍼피워킹을 알게 됐다. 큰 개를 키울 기회가 없었던 성민양은 김씨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퍼피워킹의 첫째 조건이 집에 강아지를 돌볼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개를 집에 두고 돌아다니면 안 되기 때문에 제 동의가 꼭 필요했던 거죠.”

가족들도 모두 개를 좋아할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진정한 봉사활동을 시켜보고 싶었던 김씨. 힘들겠지만 이왕 봉사할 거 1년을 몸 바쳐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퍼피워킹 신청을 했다.

안내견 후보 강아지를 만나기 전 가족들도 경기도 용인시 삼성안내견학교에서 2시간씩 3회 퍼피워킹 교육을 받았다.

드디어 2010년 10월 3일 삼성안내견학교에서 퍼피워킹 위탁식이 열렸다. 위탁식은 모견이 새끼를 낳을 때마다 수시로 갖는다. 생후 6주된 강아지 8마리가 나왔다. 태산이 형제 다섯 마리와 다른 세 마리 강아지. 형제 중 유일하게 태산이만 수컷이었다.

안내견학교 선생님은 딸만 둘을 키우는 김씨에게 “아들 한번 키워보라”며 태산이를 배정했다. 태산이의 소개 카드에는 ‘형제들이 고집이 세다’고 기록돼 있었다. 집으로 온 태산이는 역시 고집스러웠다.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한번씩 고집을 부리는 몸짓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하나하나 훈련을 받으며 안내견의 첫째 조건인 복종을 배워 나갔다. 참는 법도 익혔다.

일과

태산이는 여느 후보견과 달리 아침을 일찍 시작했다. 고등학생인 성민이 덕에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원래 후보견들은 오전 8시 기상해 오후 8시 취침한다. 지금은 퍼피워킹이 끝나 갈 무렵이어서 점점 시간을 늦춰 가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배변이다. 밖에서 배변을 처리하고 들어오면 사료를 먹는다. 오전 8시, 오후 12시, 8시 세 차례 사료를 먹고 배변을 한다. 먹는 것, 배변 모두 주인이 시킬 때만 해야 한다. 급식은 당연히 제한 급식이다.

배변훈련이 가장 힘들다. 보행훈련을 하면 장운동이 활발해져 배변 욕구가 상승한다. 그럴 경우 진정될 때까지 그 자리에 앉혀 놓는다. 그러다 보면 보행훈련이 1시간을 넘기기 십상이다.

태산이가 배변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보행훈련을 마치고 집 가까이 배변장소에 거의 다 왔는데 소변을 찔끔 쌌다. 김씨는 그때의 태산이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싸면서도 굉장히 미안한 얼굴이었다고.

“그 얼굴을 본 순간 도대체 안내견이 뭐기에 배변도 자유롭게 못하냐며 붙들고 앉아 한참을 울었어요. 너무 가슴이 아파 중간에 정말 태산이를 안내견이 되도록 키워야 하나 갈등도 했어요.”

그러나 안내견이 되는 것은 훈련 여부와 상관이 없는 경우도 많다. 제대로 훈련이 안 돼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여보낸 후보견이 안내견이 되는 경우가 있고, 잘할 것이라고 생각해 들여보냈는데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안내견이 되려면 개가 스스로 즐길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후보견은 출생부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퍼피워킹 교육을 받은 모견과 종견이 낳은 새끼 중에서도 품성이 좋은 6, 7주된 강아지를 선발한다. 의료비, 사료, 개껌, 모든 용품을 안내견학교에서 지급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안내견학교에서 나와서 관리도 해준다. 한 마리의 안내견을 훈련시키기 위해 5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훈련을 마친 안내견은 일정한 일을 하거나 보행이 많은 시각장애인에게 무상으로 지원된다.

이별

이날 태산이는 훈련소에 입소할 예정이다.

“원래 24, 25일 중 입소해야 하는데 오늘 늦게까지 데리고 있다가 데려다 줄 거예요.”

예고된 이별 때문에 김씨는 인터뷰 내내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

“태산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자원봉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살다 보니 가족이란 생각이 들었고 태산이가 우리 가족에게 준 것이 훨씬 많음을 깨달았어요.”

막내를 얻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태산이를 보면서 많이 달라졌다. 저녁에 퇴근해 들어오면 자는 태산이를 먼저 들여다볼 정도로 살갑게 대했다. 큰딸 성은(19)양과 성민양도 책임감 있게 훈련을 시켰다. 성은양은 절제를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무관심하려고 애썼다. 성민양은 악역 담당이었다. 태산이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할 경우 응분의 처벌이 온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산이는 성민양을 제일 좋아했다.

김씨는 태산이를 보내고 난 후에는 기다림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6∼8개월의 훈련을 받는 동안 무수한 테스트를 받으며 많은 후보견들이 탈락한다. 10마리를 안내견으로 훈련시켜도 3마리가 되기 힘들다.

“훈련에서 탈락하면 퍼피워커에게 분양 우선순위가 있어요. 태산이가 당당히 안내견으로 설 때까지 일단 기다려 볼 거예요.”

시각장애인 안내견

얼마 전 지하철 사건을 접하고 김씨 가족은 마음이 아팠다. 안내견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에 무척 놀라고 실망스러웠다. 다행히 김씨가 사는 지역에서는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많이 확산돼 있다. 대중교통 마트 백화점 등에서 안내견의 출입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식당이나 대부분의 대형 마트 출입은 제한적이어서 조심스럽다.

“일반인인 퍼피워커들은 출입을 거부당해도 하는 수 없지만 안내견과 생활을 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정말 안타까워요.”

김씨는 쳐다보고 예뻐해 주는 것은 좋지만 허락 없이 만지는 것은 삼가 달라고 당부했다. 가운을 입고 다닐 때는 그냥 산책이 아니라 훈련 중이므로 더더욱 터치를 자제해 줄 것을 강조했다.

“공부 중이므로 무관심하게 지나쳐 주는 게 제일 고맙죠. 관심을 보이면 집중이 흩어져 훈련이 힘들어지거든요.”

개도 가운을 입었을 때와 안 입었을 때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안내견 중에도 명랑하고 애교가 많은 애가 있지만 하네스(조끼에 달린 손잡이)만 차면 달라진다고 한다.

성민양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안내견은 그렇지 않지만 퍼피워킹 개들은 길에 먹다 남은 음식물이 버려져 있으면 먼저 달려가서 먹기 때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산이는 얼마 전 중성화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덜 안정됐다고 걱정했다.

“철이 덜 든 태산이를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말고 태산이의 좋은 점을 끌어내 주셔서 참고 잘 훈련시켜 주셨으면 해요.”

이별이 아쉬운 성민양은 태산이 귀에 속삭였다.

“태산아, 훈련소 들어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아프지 말아라.”

글=최영경 기자·사진 김민회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