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폭력 ‘도가니’ 파장] 영화가 불 댕겨… ‘몹쓸짓’에 온나라가 부글부글
입력 2011-09-29 00:16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한 편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며 관련 정부부처마저 움직이게 했다. 6년 전 광주광역시 인화학교 원생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흥행하면서 재수사 요구가 빗발치자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광주시교육청은 인화학교 감사 대책반을 꾸렸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특수학교 실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실화의 힘=‘도가니’의 힘은 실화라는 점에서 나온다.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이 보는 이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인화학교 교장(2009년 사망)과 행정실장 등 교직원 6명이 학생들을 성폭행하거나 강제 추행한 사건이 2000년부터 벌어졌다. 설립자 가족과 인척이 학교 요직을 장악해 범죄는 계속 은폐됐으나 2005년 6월 한 교직원이 성폭력 상담소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해 11월 김모 행정실장과 이모 교사가 학생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각각 징역 1년과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러나 가해 교사가 더 있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돼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앞서 기소된 2명과 김모 교장 등 6명을 검찰에 고발했고, 공소시효가 지난 행정실 직원 1명을 제외한 5명이 기소됐다.
2008년 1월 1심 재판에서 4명이 징역 6개월~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전모 교사는 공소기각 판결이 났다. 하지만 그해 7월 2심에선 피해자 측과의 합의로 고소가 취소됐고 김 교장과 박 교사는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결국 실형 2명, 집행유예 2명, 공소기각과 불기소 2명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 것이다.
◇도가니 파장 일파만파=잊혀진 사건을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다시 접한 관객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재수사와 폐교를 청원하며 분노하고 있다. 죄질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벼운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명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가명)의 아버지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나영이 아빠의 편지’라는 글에서 “제 아이를 비롯한 수많은 피해 아동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기분으로 살아간다”면서 “영혼의 살인인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는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장이 확산되자 경찰청은 28일 지능범죄수사대 1개 팀을 광주로 급파해 남아 있는 의혹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김 행정실장 등 2명에 대한 1차 재판 변호인이 광주지법원장을 지낸 ‘전관 변호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조계 전반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자 법원도 진화에 나섰다. 당시 2차 재판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던 부장판사는 “양형의 적정성 판단을 떠나 이 판결로 소수 약자가 감내할 수 없이 큰 고통을 받은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28일 서울 명동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충격적이면서 감동적이었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이 영화에서와 같은 장애아동에 대한 인권 유린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도 “영화가 고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재판 과정을 사실과 다르게 보여줌으로써 사법에 대한 신뢰가 근거 없이 훼손된 점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