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건부 영장제도 성공하려면

입력 2011-09-28 20:52

우리 형법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헌법에도 무죄추정원칙이 명시돼 있다. 법관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 경우는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있을 경우뿐이다. 그렇지만 영장전담 판사는 혐의가 중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대체로 영장을 발부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영장을 발부하든지 아니면 기각하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피의자가 구속될 경우 가족의 생계가 곤란해진다든지 혹은 학생 신분이라 구속이 장래 치명적인 불이익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 법관은 엄청난 고민에 빠진다. 이런 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27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조건부 영장제도는 주목할 만하다. 이 제도는 영장을 발부하면서 보증금 납부, 피해자 접근 금지, 출석을 담보할 보증인 등 일정 조건을 붙여 일단 피의자를 석방하는 것이다.

피의자가 조건을 이행하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이를 어기면 이미 발부된 구속영장의 효력으로 즉시 수감된다. 영미법 국가는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법체계를 가진 독일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 발부냐 기각이냐 양자택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의 형편을 고려해 법관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거액의 보석금을 내는 것을 조건으로 피의자를 풀어줄 경우 유전무죄 논란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범죄 피해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피의자 입장만 고려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석금을 조건으로 한 영장 발부는 법원이 최대한 자제하고 형이 확정된 피의자는 감형 가석방 등 모든 특혜를 없애는 것이다.

사법제도는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다. 영장 발부는 신중해야 하지만 죄를 지었다고 의심받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관대할 경우 국민 법 감정에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운명을 치명적인 실패로 몰고 가는 구속은 좀 더 신중하게 하자는 새 대법원장의 말은 되새길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