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7) 고무줄 잣대-눈감은 감시] “선물비용? 간담회로 하세요” 편법 가르치는 선관위

입력 2011-09-28 21:51


질문 하나. 다음 중 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자금으로 쓸 수 없는 사적인 경비로 판단한 것은?

① 노래 다운비용 6500원(김우남, 민주당)

② 의원님 운동용품 구입 2만5000원(신상진, 한나라당)

③ 청주 수복 GOLD(700·1800㎖) 1만3050원(심대평, 국민중심연합)

④ 수행차량 광택 20만원(박은수, 민주당)

⑤ 미술작품(유화1) 50만원(정진섭, 한나라당)

정답은 없다. 선관위는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지출내역 감시를 소홀히 하거나 판단에 너무 관대했다. 그러다보니 정치자금을 쓸 수 있는 정치활동과 정치자금 지출이 금지된 사적 경비를 판단하는 잣대는 선관위가 아니라 국회의원이 쥐고 있었다. 법규정상 정치자금은 사적인 용도로 써선 안 되도록 돼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국회의원이 “정치활동”이라고 주장하는 곳이면 어디든 쓸 수 있었다. 선관위의 느슨한 감시가 이런 결과를 낳는 데 한몫했다. 국민일보가 지난 두 달여간 현장취재를 통해 만나고, 통화한 각 지역 선관위 직원들조차 “1차적으로 쓴 사람이 판단할 문제”라고 할 정도였다.

◇선관위의 과잉친절(?)=초선인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은 지난해 1월 8일 ‘전문가 간담회’에 40만3200원을 썼다. 외견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국민일보 탐사기획팀은 이 항목을 ‘1차 이상내역’으로 분류했다. 지출처가 ‘롯데쇼핑㈜ 관악점’으로 표기돼 있었기 때문이다.

확인 결과 간담회 비용으로 표기된 이 내역은 밥값이 아닌 선물비용이었다. 성 의원실 관계자는 “2009년 방중 때 만났던 중국 법원 관계자들이 이듬해 한국을 찾았는데 그분들 선물로 머플러 2∼3개를 산 걸로 기억한다”며 “친선 목적의 답례품이지만 혹시 기부행위로 오해받을까 염려돼 선관위 직원에게 문의했더니 ‘전문가 간담회’로 처리하면 된다고 알려줘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해당 항목의 위법성 유무를 떠나 선관위가 문제 소지가 있는 지출의 ‘정치활동 포장법’을 알려준 셈이다.

선관위는 후원금으로 5만원짜리 체온계를 산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과 보좌관 병문안 비용으로 3만7400원을 쓴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 등의 지출도 모두 정치활동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선관위가 보는 정치활동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선관위 관계자의 답변은 이렇다.

“국회의원이 피로누적으로 몸살이 나도 정치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요. 정치활동하면서 아팠다고 하면 받아주는 거지 우리가 의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언제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 무슨 일을 하다가 그랬는지 진단서와 경위서를 가져오라고 할 수 있겠어요?”

◇‘고무줄 잣대’…선관위의 변명=국회의원의 정치자금 씀씀이를 감시하는 역할은 각 지역 선관위 지도계가 맡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명확한 판단의 잣대는 없었다. 취재 중 만난 한 지역 선관위 관계자는 “의원이 회계보고를 제출하면 영수증과 금액, 실제 집행된 게 맞는지 확인하는 게 거의 전부”라고 실토했다. 회계의 기본인 덧셈, 뺄셈조차 맞지 않은 보고서를 그대로 접수한 다른 선관위 관계자는 “당시 ○○○선거 준비로 경황이 없어 일일이 들여다보진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상내역 관련 질문에 다른 지역 선관위 관계자도 “중앙선관위에서 판례처럼 내려 보내는 유권해석을 보면 정치활동의 범위가 상당히 넓구나 하는 느낌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자금법에 대한 고무줄식 해석을 넘어 아예 선관위가 국회의원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역구 숙소를 딸 자취방으로 내준 한나라당 윤영 의원과 관련 국민일보의 취재가 시작되자 거제선관위 지도계장은 “내가 다른 경로(국회의원 지역사무소)로 확인해보니 문제없더라. 내가 문제가 없다면 그리 알 것이지 뭐가 ‘그런가요(기자의 반응)’인가”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정치자금 관리제도와 의원들의 정치문화가 모두 바뀔 필요가 있다”며 “항목별로 사적이고 부정한 용도를 구체적으로 열거해 정치행위로 인정될 수 있는 지출과 구분하고, 투명하지 못한 정치자금 사용은 배제시키는 게 타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