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은 여러 개의 객차로 이루어진 기차와 같은 것”… 파울로 코엘료 신작 소설 ‘알레프’

입력 2011-09-28 17:50


브라질 출신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64)의 신작 장편 ‘알레프’(문학동네)는 2006년 그가 ‘예루살렘의 길’로 명명한 순례의 여정 속에서 얻은 영감을 소설화한 것이다. 소설은 우리가 우주와 교감하게 되는 특정 공간인 ‘알레프’라는 개념에 근거해 우주라는 거대한 육체 안에서 함께 영적 성장을 이루는 영혼에 대해 들려준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 예루살렘으로 가지는 않았다.

코엘료는 이렇게 설명한다. “순례 중에 나는 여러 나라를 들렸지만 깨달음은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찾아왔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보름 동안 일곱 개의 시간대를 지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9288킬로미터에 달하는 길 위에서였습니다. 힐랄이라는 이름의 한 터키 소녀(진짜 이름은 아닙니다)와 함께였습니다.”(‘작가의 말’)

이번 신작은 코엘료 자신의 이야기다. 코엘료가 스물한 살 힐랄을 만난 것은 이미 일곱 개 나라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진 뒤 도착한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였다. “선생님이 기차로 러시아를 횡단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저도 동행하겠어요. 선생님의 첫 책을 읽었을 때 어떤 목소리가 말하는 걸 들었어요. 예전에 선생님이 성스러운 불을 피워주었고 언젠가 선생님에게 제가 그 호의에 답례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75쪽)

터키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바이올린 공부를 위해 예카테린부르크로 건너왔다는 힐랄은 코엘료에게 시베리아 횡단여행에 동행시켜달라고 떼를 쓰듯 매달린다. 객차 안에서조차 훌리건처럼 따라붙는 힐랄을 떼어놓으려던 코엘료는 그녀의 진심어린 말을 들으면서 영적인 신뢰감을 회복하기에 이른다. “생이… 생이 당신을 내게 데려왔어요. 당신은 나를 만나러 왔어요. 그렇죠?”(118쪽)

하지만 정작 코엘료가 그녀를 받아들인 것은 그녀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힐랄의 눈을 통해 그 자신이 오래 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알레프’ 상태를 경험했던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소녀 혹은 여인의 눈물이 그 문들 중 하나를 통해 나오고 싶어하는 듯하다. 누가 그랬던가. 눈물은 영혼이 흘리는 피라고. 그리고 지금 나는 바로 그것을 보고 있다. 나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 과거로 가고 있고, 그곳에는 신께서 인간에게 준 가장 성스러운 기도를 외우는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앉아 나를 기다리는 그녀가 있다.”(117쪽)

그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몇 개의 생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생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우리 생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비유해 들려주는 대목은 소설의 압권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와 함께합니다. 그들은 우리 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우리는 다른 방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죠. (중략) 그러므로 우리가 ‘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개의 객차로 이루어진 기차와도 같은 것입니다.”(179쪽)

우리의 삶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우주 속을 나아가는 기차여행이라는 것, 인간은 여러 개의 삶을 살아가고 그 하나하나의 삶이 기차를 이루는 객차이며, 중요한 것은 오직 ‘현재’일 뿐이라는 코엘료의 이야기는 커다란 울림을 준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