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1980년이여, 다시 한 번

입력 2011-09-27 17:35

1980년 당시 공화당 후보인 로널드 레이건은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인 민주당의 지미 카터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 대선에서 현직 프리미엄을 꺾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런데 요즘 그 가능성이 슬금슬금 미국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지난 15일 ‘지금 당장 투표한다면 누구에게 하겠는가’라는 여론조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패배했다. 오바마는 46%를,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지낸 공화당의 밋 롬니는 48%를 얻었다. 오바마 지지도는 이달 들어 두 차례나 취임 후 최저치를 갱신했다.

공화당으로서는 속으로 콧노래를 부를 만하다. 오바마가 분위기 반전을 노리면서 야심차게 내놓은 44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은 공화당으로부터 거의 무시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다. 민주당에서조차 ‘대표선수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니, 정말 보수 진영이 ‘AGAIN 1980’을 외칠 만한 분위기다.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와 밋 롬니. 현재로선 두 사람이 공화당의 1980년 환호를 재현시킬 수 있는 유력한 후보다. 페리가 자신의 대권 도전 선언 전에 줄곧 여론조사 1위였던 롬니를 단숨에 꺾을 수 있었던 힘은 강성 보수유권자 단체인 티파티의 지원 때문이다. 보수적인 기독교 복음주의 신앙을 갖고 있는 페리는 극우 보수주의자이다.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극우적 발언을 자주한다. 집안에 배관시설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청년 시절 방황을 계속하다 27세 공군 조종사 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정상적 생활을 시작했다.

강경 보수는 지금 공화당의 주류다. 보수 진영은 오바마 정권에 대해 비판을 넘어선 혐오의 시각마저 갖고 있다. 오바마의 거의 모든 정책에 ‘NO’라고 말하는 수준이다. 지금 워싱턴 정치에서는 강성(强性) 그 자체가 보수 진영의 최대의 힘이다.

대선 도전 두 번째인 롬니는 공화당 내에서 중도 쪽에 가깝다. 이른바 ‘롬니케어’로 불리며 주지사 시절 시행한 전 주민 의료보험 가입은 공화당의 폐기목표 1호인 오바마케어의 모델이다. 낙태와 총기 규제 이슈에서도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당연히 보수 진영에서는 ‘우리편 맞아?’라는 비판들이 쏟아진다. 부친이 미시간 주지사를 지낸 명문가 태생에 하버드대 법대 졸업, 경영컨설팅회사 베인&컴퍼니 CEO를 역임한 억만장자, 흑자를 달성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등 대선 후보 스펙으로선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다. 2003년 주지사에 취임하자마자 30억 달러 적자를 첫 해에 해소하고, 일자리를 늘린 경제적 업적은 현재 경제 위기를 구할 정치지도자로 꼽힌다.

두 사람은 이렇듯 ‘공화당의 1980년’을 재현시킬 수 있는 강점들을 갖고 있다. 페리는 보수적 가치를 확실히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롬니는 보수 성향의 중도층을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두 사람의 대결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집토끼 지킬 것인가(페리), 산토끼 잡으러 갈 것인가(롬니)’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지금 ‘AGAIN 1980’ 전략을 어떻게 짤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페리는 너무 자극적이고 ‘꼴통 보수’여서 불안하고, 롬니는 보수적 정체성의 혼란으로 마음이 안 간다는 주장도 확산되고 있다.

두 사람의 경쟁은 격한 내부 비판과 동조, 토론을 거치면서 미국 보수 진영의 분위기를 잡아갈 것이다. 미국 보수 진영의 분위기가 역시 내년 대선을 치르는 한국의 보수층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대결은 참으로 흥미롭다.

김명호 워싱턴=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