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희선] 행복한 나, 행복한 너

입력 2011-09-27 17:55


주말 지나 사람들을 만나면 TV에서 벌어진 일들이 자주 화젯거리로 등장한다. 예전에는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 스포츠가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단연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다. 아마추어들이 참여하는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탑 밴드’ 등을 비롯해 대한민국 최고 가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나는 가수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아니 나는 왜 이들의 경연에 열광하는가(이상은 나도 즐겨 보는 방송 리스트다).

지상파와 케이블을 막론하고 채널 선택권이 사라질 정도로 과도해진 예능 오디션 열풍을 비판하는 시선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이들 프로그램을 챙겨 보는 이유가 있다. 이른바 ‘악마편집’이라며 논란이 되고 있는 재미 추구 장치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순수하고 강력한 힘, 말하자면 참가자들 한 명 한 명의 결연한 표정에서 숨김없이 드러나는 ‘꿈’이라는 감동 코드에 속수무책으로 접속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결과에 따라 환호와 눈물은 엇갈려도 꿈꾸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혹은 해봤다는 가슴 저릿한 희열감이 그들에게서 전파되어 내 심장을 두드린다. 실패조차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꿈이라니, 참 힘이 센 에너지가 아닌가.

지난주에 우연히 본 강연을 통해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한 통신사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한 달에 두 번 개최하는 이 강연회는 이름도 ‘드림 스테이지’인데, 마침 초대받은 강연자가 ‘꿈PD’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정신과 전문의였다. 그가 정의하길, 꿈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남보다 잘하는 일이고 시간만 나면 노력하게 되는 일’이다. 이런 꿈은 곧 그 사람의 천재성과 직결되고, 그것을 발휘하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도 했다. 꿈=천재성=행복. 이 단순한 등식을 따르면 누구나 쉽게 행복해질 것만 같은데 사람들은 왜 마음이 아파 정신과를 찾고 TV를 통해 남의 꿈이나 시청하며 삶의 자극을 받으려 하는 걸까?

궁금증에 답하듯 강연자가 또 하나의 정의를 내렸다. 행복의 두 번째 조건, 즉 사랑에 관한 것이다. 사랑이란 ‘상대의 천재성(꿈)을 알아보고 이를 응원해 주는 마음’이란다.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부부 간, 혹은 부모 자식 간에도 상대를 온전히 인정하고 응원하는 마음만 먹기란 정말 쉽지 않다. 때로 싸우고, 잔소리하고, 하물며 이별할 때조차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사랑이라는 감정 아니던가.

갑자기 강연자가 관객에게 물었다. “자, 지금 꿈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분, 손 들어 보세요.” 객석의 절반쯤이 손을 들고 ‘우∼’ 하는 소리가 일렁였다. 나도 무심결에 손을 들었다가 슬며시 내려놓았다. 꿈은 혼자 꿀 수 있지만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방금 떠올린 그들과 ‘행복한 나, 행복한 너, 그래서 행복한 우리’로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박희선(생태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