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순간을 살핀다 나는 심판이다
입력 2011-09-27 22:15
“퍽!”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 글러브에 예리하게 꽂힌다. 0.3∼0.5초의 시간. “스트라이크 아웃!” 난 ‘내가 본 그대로’의 결과를 외친다. “와∼!” “에이….” 덕아웃과 관중석에서 기쁨과 아쉬움의 탄성이 교차한다.
시즌 막바지, 치열한 순위 다툼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한 점 차 승부와 연장 접전이 이어지며 공 하나가 승패를 가른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관중들까지 모두 판정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나는 야구라는 영화의 ‘악역’이자 ‘조연’을 자처한다. 판정의 순간마다 희비의 쌍곡선이 그려지고 패자는 나온다. 난 주연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내가 주연이 되는 순간, 그것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의미한다.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판정이 부각된다.
선수가 실책을 하듯 심판도 오심을 한다. 신이 아닌 한, 기계가 아닌 한 ‘인간적인’ 스포츠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경기의 일부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오심을 합리화하거나 변명하며 빠져나갈 수 없다. 판정의 모든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체력 소모와 부상의 위험은 나의 일상이다. 한여름에 10㎏이 넘는 보호 장비로 온몸을 감싸고 경기를 치르면 몸무게가 3㎏ 정도 빠진다. 보호구를 착용해도 파울 타구나 폭투는 나를 피해가지 않는다. 장시간 마스크를 쓰고 허리 숙여 경기를 하다 보니 목 디스크나 허리 통증도 늘 따라다닌다.
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가족과도 생이별이다. 지방 경기로 출장이 잦다 보니 시즌 중에는 집에서 자는 날이 40여일에 불과하다. 함께하는 저녁 식사나 주말 나들이는 요원한 희망사항이다. 갑자기 아이가 아파도 전화로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걸 ‘숙명’으로 감수할 수 있는 것은 야구가 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긴박한 순간을 정확하게 판단했을 때의 희열,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이 보내주는 신뢰가 나를 심판의 자리에 있게 한다. 프로야구 30년, 600만 관중 시대를 맞아 그 축제의 무대 한가운데 묵묵히 맡은 바 제 할 일을 다하는 나와 내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늘 자랑스럽다.
나는 오늘도 심판복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판정의 페르소나(persona), 검은 마스크 너머로 힘주어 “플레이 볼!”을 외친다. 경기를 끝내는 마지막 공 하나까지 모두가 수긍하는 판정을 하기 위해 최선의 자리에서 선수와 공을 주시한다. 나는 심판이다.
사진·글=홍해인 기자 hi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