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철희 (3) 12년 아내의 간절한 기도로 ‘장로’ 직분 올라
입력 2011-09-27 18:06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거의 마친 1981년 어느 날, 저녁 예배에 가려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도 교회에 한 번 가 볼까?” 아내의 눈이 똥그래졌다.
교회라고는 중학교 때 친구 정학성(현 서울대 교수)을 따라 딱 한 번 간 적이 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어디 다녀오는 길이냐고 물으셨다. “교회요.” “교회? 교회는 나가지 마라.” 단호한 아버지 말씀을 그 때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아내더러 교회를 가자고 하다니! 그것도 아내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집안이 난리가 났는데 교회를 가 보자고 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아내가 좋아서 다니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성령의 강권하심이 내 마음을 움직이시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내가 그토록 열심히 다닌 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 저녁 예배 시간.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 틈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설교를 마친 조용기 목사는 잠시 눈을 감으라 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실 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주위의 몇 사람이 의자를 삐거덕거리며 일어났지만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교회 구경 온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조 목사는 말했다.
“일어나지 않은 사람 가운데 12명 정도 더 일어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고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기회는 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여러분에게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일어나십시오.”
그래도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곁에 있던 아내가 내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나는 스프링 튕기듯 그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내가 왜 일어났는지 잘 몰랐지만 다시 앉기도 민망해 목사님이 하는 결단의 기도를 따라 하고 말았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단순히 순서에 따라 일어나야 하는 건 줄 알고 일어났다가 결신 기도를 따라 한 것이다.
“이건 사기야. 이런 식의 공갈에 내가 넘어가다니! 조 목사는 늘 그런 식으로 교인을 끌어 모으나?” “아니에요. 목사님이 두 번씩이나 그렇게 강하게 말씀하시는 건 처음이었어요.”
아내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그날부터 아내에게 조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모두 가져오라고 해서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끝 부분만 들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결단시키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느덧 나도 모르게 말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즈음 부산에 있던 가장 가까운 친구 한 명이 급성 B형 간염으로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보름이 고비라고 했다. 아내가 교회에서 발간하는 신문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똑같은 B형 간염에 걸린 자매가 치유 받았다는 간증이 실려 있었다. “다른 신문도 있소?” 아내가 가져온 신문 간증 코너를 모두 읽었다. 친구의 병 때문에 읽기 시작했지만 그 속에서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실재와 은혜 속으로 빠져들었다.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남자 구역예배도 기다려졌다. 그날만큼은 어떤 일도 모두 미뤘다. 구역 모임에는 은행원, 사업가, 쌀집 아저씨, 빵집 아저씨, 부동산 아저씨도 있었다. 사회에서는 어울리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성경공부를 하며 엉뚱한 질문에 웃고 떠들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자원하여 세례를 받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내는 나를 위해 기도할 때 처음부터 구원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고 신실한 장로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단다. 아내의 기도 응답으로 나는 예수 믿고 12년 후 장로가 됐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