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거듭나는 것이 최우선 과제

입력 2011-09-26 18:19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에 들어서면 대법정으로 향하는 오른쪽 언덕에 ‘국민을 위한 사법’이라고 새겨진 기념석이 있다. 그만큼 ‘국민의 신뢰’는 사법부의 간절한 염원이자 역대 대법원장의 최대 과제였다.

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지난 23일 퇴임사에서 “오늘의 사법부 현실과 국민이 여망하는 사법부 사이에는 커다란 틈새가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제15대 양승태 대법원장이 26일 취임했다. 가장 보수적인 국가기관으로 변화에 둔감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법부가 양 대법원장 취임을 계기로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민 신뢰, 사법개혁 과제=분쟁의 종국적인 해결기관인 사법부의 판단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정의로 받아들여질 때 국민의 신뢰는 싹트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일부 판결은 전관예우와 온정주의로 신뢰를 잃었고 이념편향성 재판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법조계는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특정집단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국민의 편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느냐를 국민을 위한 사법부의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 6일 인사청문회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국민 속에 자리 잡는 법원을 만드는 것을 종국적인 목표로 삼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사법부 독립도 중요한 과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기에 취임한 양 대법원장은 정치적 외압에 시달릴 수 있다. 하지만 사법부가 정치재판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사법제도 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양 대법원장은 “재판제도와 절차, 심급구조, 법원조직 등 기존의 사법구조 전반을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할 단계에 이르렀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대법원 상고심 폭주 문제도 해결 과제다. 현재 대법관 1인당 연간 처리해야 할 사건이 3000여건에 달해 제대로 심리를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법연수원생을 법관으로 뽑는 현행 임용방식 대신 변호사·검사 중 10년 이상 법조경력자를 신규 법관으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를 정착시켜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검찰과의 해묵은 대립을 해소하고 헌법재판소와의 업무영역 다툼을 대승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대법원 인적 구성 다양화될까=양 대법원장의 첫 과제는 대법관 인선이다. 오는 11월 진보성향의 박시환 대법관과 원광대 출신의 노동법 전문가 김지형 대법관의 임기가 만료된다. 내년 7월에는 유일한 여성인 전수안 대법관을 비롯해 박일환 김능환 안대희 대법관도 퇴임한다.

양 대법원장은 대법관 추천위원회를 구성, 후임 대법관을 3배수까지 추천받아 제청하게 된다. 이에 따라 대법원의 지형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김영란(퇴임) 이홍훈(퇴임)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대법관은 개혁성향 판결과 소수자를 배려한 의견으로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렸다. 이들이 여성이거나 비서울대 출신, 또는 변호사 경력이 있어서 대법원 구성 자체가 다양해졌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교체된 대법관을 보면 이런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2008년 3월 임명된 차한성 대법관 이래로 현 정부 들어 지명된 대법관 7명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남성이고 50대이며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김황식 전 대법관이 국무총리에 임명되면서 교수 재직 중 임명된 양창수 대법관을 빼고는 전부 현직 고위법관 출신이기도 하다.

양 대법원장은 “다양한 견해가 반영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서울대 출신 대법관이 거의 없다는 지적에도 “반영할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력, 지역, 출신학교 등을 감안해 대법원 구성의 폭을 넓히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여성대법관이 몇 명 나올지도 관심사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수와 서열 중심의 남성 위주 고위법관 말고 시대적 요구인 다양성을 수용할 대법관을 제청하는 것이 새 대법원장의 제1 과제”라고 말했다.

김재중 우성규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