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난 오빠 소리가 좋아… 요즘도 들으면 가슴이 찡해”
입력 2011-09-26 21:17
‘국민 가수’ 타이틀을 보유한 가수들 이름 앞엔 저마다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가왕(歌王) 조용필, 트로트의 황제 나훈아….
그렇다면 남진(본명 김남진·66)은 어떠한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기도 하지만 남진의 노래 인생을 담기엔 부족함이 많은 표현이다. 그래서 지난 21일 만난 그에게 수식어로 무엇이 좋겠는지 물었다. 아들 또래인 30대 초반 기자에게 진한 전라도 억양이 묻어나는 반말투 답변이 돌아왔다.
“난 그냥 오빠 소리가 좋아. 영원한 오빠 남진이라고 하는 게 제일 맘에 들더라고. 요즘은 팬들이 오빠, 오빠 하면 정말 가슴이 찡∼해.”
오빠는 건재하다
‘2011 남진 45주년 기념 콘서트-님과 함께 45년’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3∼6월 전국 9개 도시에서 콘서트를 열었던 남진. 그는 이달 10일 충북 청주를 시작으로 앙코르 공연에 돌입했다. 다음 달 8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홀 공연을 포함해 내년 2월까지 무려 17개 도시를 투어하는 강행군이다. 서울 서초동 한 작업실에서 마주 앉은 남진과 우선 공연을 화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앙코르 콘서트를 열기로 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3월에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공연을 여는데 가는 곳마다 팬들 성원이 대단했어. 표가 매진되고 암표가 돌고 혹시나 표가 있을까 공연장까지 왔다 돌아가신 분도 많고. 그 분들 위해서라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미안하니까.”
-3월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앞두고 ‘평생 잊을 수 없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랬지. 내가 월남전 참전한 뒤 복귀한 첫무대가 당시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서울시민회관이었니까. 그때가 71년이야. 딱 40년 전 섰던 그 무대에 다시 서니 감회가 새롭더라고. ‘앞으로 몇 년 더 노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 남은 세월,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여전히 수만 명의 팬이 ‘남진 콘서트’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내가 좋은 작곡가 선생님들을 만나서 좋은 곡을 많이 불렀잖아. 팬들은 내 노래 들으며 옛날을 추억할 수 있지. 또 무대를 보면서 ‘남진 힘 안 빠졌다’ ‘나이 들지 않았다’라는 느낌도 받는 거 같아. ‘와, 저 나이에도 저렇게 하는구나’ 생각되니 긍정적 에너지를 얻으시는 것 같기도 하고.”
4년 뒤 남진은 고희(古稀)를 맞는다. 하지만 직접 대면하니 남진의 나이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피부는 팽팽했고 옷차림은 맵시가 났다.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었더니 ‘운동’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매일 2시간씩 걷기 시작한 게 5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술 담배를 안 하는 것도 비결 중 하나로 꼽았다. 술은 30년 전, 담배는 19년 전 끊었다고 했다.
최근 그가 출연해 화제가 됐던 방송을 놓고 대화를 이어갔다. 바로 지난 12일 방송된 ‘나는 트로트 가수다’. MBC가 추석을 맞아 ‘나는 가수다’(‘나가수’)를 모방해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남진 외에 태진아(58) 김수희(58) 등 정상급 가수 7명이 청중 평가단 앞에 서서 가창력을 겨룬 내용이었다.
남진은 당시 무대에서 심수봉(56)의 ‘비나리’를 특유의 호소력 있는 음색으로 소화해 1등을 차지했다. 그런데 더 관심을 모았던 건 그의 창법이었다. 고음과 성량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나가수 문법’을 따르지 않고도 관객과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걸 남진은 증명해냈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 무대가 화제가 됐습니다.
“다들 (‘나가수’ 무대에서는) 소리를 크게 질러야 한다고 그러던데 난 그렇게 안 하고 그냥 내 스타일대로 했지. 1등 할 줄은 몰랐어. 정말 깜짝 놀랐지.”
-무대에서 ‘1위 남진’ 발표되니 기분 어떠시던가요.
“사실 그 프로그램에서 처음 출연 제의가 왔을 땐 안 한다고 했거든. 전부 후배들이고 왠지 생뚱맞게 느껴지더라고. 그런데 장윤정 소속사 사장이 원래 잘 알던 후배인데 간절하게 부탁했어. ‘가요계가 요즘 침체인데 형님이 나와서 좋은 분위기 좀 만들어 달라’. 그래서 거절도 못 하고 결국 나가게 된 거야. 이렇게까지 어필할 줄은 몰랐지. 반응이 너무 좋으니 당황스럽더라고.”
김대중 조용필 나훈아 그리고 윤복희
그의 부모에게 남진은 딸만 내리 6명을 낳은 뒤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천시되던 60년대 중반, 부친(김문옥씨·사망)은 아들이 가수가 되려한다는 걸 알고 처음으로 아들을 혼냈다. ‘세상에 할 게 없어서 풍각쟁이를 하느냐’고 심하게 꾸지람했다.
부친이 이처럼 역정을 냈던 건 자신이 목포 지역의 유지로 지역 사회에서 존경 받던 인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진의 아버지는 목포일보 발행인에 제5대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지역에서 명망이 높았던 만큼 그의 집엔 조병옥·장면 선생 등의 왕래가 잦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주 집에 들렀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엔 김대중 전 대통령하고 김상현 전 의원이 자주 와서 아버지한테 용돈 타가곤 했어. 당시엔 김상현 전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2인자’ 비슷했거든. 예전에 대통령 되시고 청와대에 나를 초청하기에 갔더니 대통령이 사람들 있는데서 말씀을 하시더라고. ‘내가 예전에 진이 아버지한테 신세 많이 졌다’고. 어릴 때 나를 보면 굉장히 예뻐하셨지.”
이런 남진의 아버지가 작고한 건 아들이 당대의 스타가 되기 직전인 65년이었다. 아버지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가수의 길에 들어선 남진.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모두가 알다시피 대단했다. ‘가슴 아프게’ ‘님과 함께’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대여 변치 마오’…. 내놓는 곡마다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남진의 대척점엔 고향도, 창법도, 음악 성향도 다른 희대의 라이벌 나훈아가 있었다.
-나훈아씨가 2008년 악성 루머를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연 이후로 아예 활동을 접으셨는데.
“너무 안타까워. 훈아는 최고 스타인데 이렇게 안 보이니까 가요계가 다운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런 친구가 돌아와야 젊은층에만 치중된 가요계 분위기를 바꿔놓을 수 있어. (조)용필이도 마찬가지야. 신비주의도 좋지만 대중하고 좀 더 가깝게 지내야지. 스타라면 대중과 가까이 있어야 해.”
-‘남진 나훈아의 조인트 콘서트’ 같은 걸 생각해보신 적은 없나요.
“바로 그런 공연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 내가 아니라 훈아랑 용필이 둘이서 해도 돼. 그 자체가 가요사에 한 페이지를 남기는 공연이잖아. 그런데 한 사람(나훈아)은 어디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고, 한 사람(조용필)은 혼자서 대형 공연만 하고 있으니 좀 안타깝지.”
-지난 4월 한 토크쇼에 나와 ‘(음악 활동을) 열심히 못한 게 후회된다’고 하셨는데.
“난 진짜 내 노력에 비해 운이 좋은 사람이었어. 나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훈아나 용필이에 비하면 편하게 여기까지 왔거든. 용필이 처음 봤을 때 얘기해줄까? 70년대 초반이었는데 서울 변두리 나이트클럽에서 봤어. 조명도 없는 무대에서 누가 기타 치며 노래 하는데, 노래가 기가 막히는 거야. 그래서 나한테 데려오라고 했지. 그게 용필이었어. 그런데 결국 피나는 노력을 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더라고. 훈아도 용필이처럼 고생한 건 마찬가지고.”
-열심히 안 했다고 말씀하시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르셨으니 크게 후회는 없을 것 같기도 한데요.
“아니야. 허무의 시간, 낭비의 시간이 너무 많았어. 내가 그때 음악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지금 ‘열린음악회’ 같은 데 나가면 무대 자체가 바뀌지. 내가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혹은 기타를 메고 전문 세션 수준으로 연주하며 노래한다고 생각을 해봐. 이건 완전히 그림이 달라지는 거야.”
남진은 그래서 요즘 온통 음악 생각만 한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맡에 있는 기타를 잡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매일 5시간 이상 노래 연습, 음악 공부에 매달린다.
인터뷰 말미에 전 부인인 윤복희(65)에 대한 얘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윤복희는 지난 4월 한 방송에 출연해 “첫 번째 남편 보라고 일부러 남진과 결혼했다. 남진이 내게 고백한 순진성을 이용했다. 나는 나쁜 여자였다”며 사과했다. 당시 윤복희가 출연한 방송을 봤는지 묻자 “못 봤는데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었다”고 했다. “나한테 사과할 게 뭐 있어. 34년 전이니까 아주 오래된 일이잖아. 그 친구(윤복희)야 혼자니까 괜찮지만 난 가족이 있으니까 그 얘기 듣고 가슴이 덜컥 하긴 했어(웃음).”
여전히 활력이 느껴지는 남진이지만 그 역시도 이젠 은퇴를 생각할 나이. 남진은 “드문드문 은퇴 시기가 언제쯤일지 생각해보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마음을 울렸다.
“내가 앞으로 5년을 더할지, 10년을 더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생각하는 건 있어. 팬들이 나한테서 떠나기 전, 그 바로 직전에 내가 먼저 떠나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좋은 모습을 남길 수 있잖아. 그 시기가 언제일지 잘 지켜보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지.”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