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설화 소재 ‘모성’의 본질 탐구하다… 연희단거리패 연극 ‘자장가’

입력 2011-09-26 17:53


아이는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말을 듣고도 기어코 침입자를 맞아들이고 만다. 엄마인줄 알았던 사람은 사실은 엄마가 아니었고 위험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자장가’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설화를 통해 모성의 본질을 설득력 있게 탐구한다.

이 연극에서는 호랑이 설화 두 편과 그 속에 등장하는 두 개의 호랑이 캐릭터가 살짝 변형된 채 겹쳐진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 속 ‘떡 하나 주면 잡아먹지 않겠다’던 호랑이와 사람이 되기 위해 마늘과 쑥만 먹다가 끝내 포기하고 만 단군신화 속 호랑이가 하나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오누이가 아니라 엄마를 기다리는 소년이다. 엄마는 이미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는데 엄마를 삼킨 호랑이는 실은 인간이 되지 못한 단군신화 속 호랑이.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겹겹이 한을 품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팔폭병풍 속 동물들이 혼자 노는 아이의 친구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내용 뿐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크지 않은 무대 위에서는 근대 이전 서민들의 오락거리였던 만석중놀이(전통 그림자놀이의 하나)가 펼쳐진다. 병풍 속 동물들이 그림자인형극으로 표현되는 것. 만석중놀이는 병풍 속 동물들의 세계와 소년이 속한 현실을 구분 짓기 위한 무대장치로 활용된다. 극이 전개될수록 현실과 전설이 혼재되고, 주인공 남자아이도 현실과 병풍 속 환상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판타지와 현실이 뒤섞일수록 외려 주제는 선명해진다. 호랑이와 남자아이를 제외한 인물들은 무대에 등장하지 않으니 2인극이라고 볼 수 있지만, 기존의 2인극들과는 달리 무대에 그림자로 등장하지 않는 이들의 존재감이 강렬하다.

아이를 잡아먹으려 왔던 호랑이가 환생해 아이 엄마가 되는 결말이 다소 안이하게 여겨질지도 모르나, 사랑과 모성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선 필연적인 귀결이었을 터. 한 시간 정도로 짧아 연극이 낯선 초보 관객이 보기에 지루함도 없다. 강석현 원작으로 이윤택 극본, 남미정 연출, 손청강 김연지 이민안 출연. 제11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공연작으로 다음달 7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