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도라산역과 DMZ영화제

입력 2011-09-26 17:45


지난 22일 오후 민간인통제구역 내에 있는 도라산역을 다녀왔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이 그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에 있는 도라산역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도의 남측 최북단 역이다. 임진각 근처 임진강역에서는 열차로 6분 거리. 도라산역에서 북으로 1.8㎞를 더 가면 남북한 경계인 군사분계선이 나오고, 경의선은 북측 지역의 판문, 봉동, 손하, 개성역을 거쳐 평양, 그리고 종점인 신의주역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현재 북으로 가는 철길은 도라산역에서 막혀 있다.

도라산역은 북으로는 갈 수 없는 반쪽 역이지만 남북 화해의 염원이 담긴 상징적인 공간이다. 2000년 6·15공동선언으로 조성된 남북한 화해 무드를 타고 2002년 4월 11일 도라산역이 개통됐고, 이듬해 6월에는 경의선 남북 구간이 완전히 연결됐다. 2007년 5월 시범운행을 거쳐 7월부터는 문산∼봉동을 오가는 남북 정기화물열차 운행이 시작돼 남북 화해 무드는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정기화물열차는 2008년 11월 28일을 끝으로 운행이 중단됐다.

종착역 아닌 종착역이 되어버린 도라산역. 영화제 개막식날 찾은 역에는 ‘서울 56㎞, 평양 205㎞’란 이정표가 쓸쓸하게 서 있었다.

DMZ(비무장지대)를 전면에 내세운 DMZ다큐영화제가 도라산역을 개막식 장소로 택한 것은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DMZ는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한반도에 남긴 깊은 상흔이다. 분단과 대립, 갈등의 상징이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진솔한 기록인 다큐영화의 향연인 DMZ다큐영화제는 역설적이게도 DMZ를 통해 ‘평화, 생명,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욱한 인간들이 스스로 발길을 끊은 금역(禁域)이지만 남북이 마음을 열고 소통에 나선다면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영화제는 웅변하고 있다. 개막식에서 원로배우 박정자씨가 낭독한 ‘평화생명 선언문’에는 영화제의 지향점이 잘 집약돼 있다.

‘우리는 모든 평화파괴 행위에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편견과 차단에 반대한다. 우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살육과 갈등의 땅을 평화와 화해의 땅으로 가꾸려 한다. DMZ는 푸르고 새롭다. 거기에서 희망이 숨쉬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소통의 힘으로 생명을 지향한다.’ 영화제 조직위원인 김훈 작가가 쓴 이 선언문은 DMZ에서 우리가 뭘 깨닫고, 이를 통해 뭘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도라산역 개막식은 올해가 처음이다. 1회 영화제는 파주출판도시에서, 2회는 통일대교 입구 통일의 관문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영화제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군 당국의 협조를 받아 민통선 내로 장소를 옮겼다.

영화제는 ‘평화, 생명, 소통의 DMZ’를 표방하고 있지만 현실은 갈 길이 아득하다. 개막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신촌·서울 방면 승강장으로 향하는데 개성·평양 방면 승강장으로 향하는 통로를 백두산 천지가 그려진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 그 앞에서 외국인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마음이 착잡했다.

도라산역은 월요일과 공휴일을 빼고는 지금도 하루 2회 관광열차가 오간다. 임진강역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관광신청을 하면 임진강을 건너 도라산역까지 가 제3땅굴 등 주변 관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도라산역 대합실 벽에는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란 글이 적혀 있다. 철길이 다시 열려 마음 놓고 개성, 평양까지 오갈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라동철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