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시간 비운 사이… MB 돌아오자마자 ‘내우외환’
입력 2011-09-25 18:23
이명박 대통령이 20∼24일 유엔총회 참석차 다녀온 미국 출장은 3박5일이었다. 공군 1호기가 20일 오전 11시50분 서울공항을 이륙해 24일 오후 2시 다시 내릴 때까지 겨우 98시간이 걸렸다. 자리를 비운 건 채 100시간도 안 되지만, 그 사이 이 대통령이 공들여온 현 정권의 두 가지 ‘브랜드’가 뿌리부터 흔들려 버렸다. ‘스캔들 없는 정권’과 ‘경제위기를 극복한 정부’가 그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권력비리, 교육비리, 토착비리의 3대 비리 척결을 강조하며 “스캔들이 없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역사”라고 했다. 또 이번 방미 기간에 동포들과 만나 “대통령이 돼서 경제위기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 내가 대통령일 때 위기를 두 번 맞은 게 다행”이라며 ‘경제대통령’으로서 위기 극복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98시간 만에 귀국해 마주한 상황은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줄줄이 거명된 비리 의혹과 하루에 103포인트나 폭락한 증시, 널뛰기를 거듭하는 환율, 국제통화기금(IMF) 등 해외에서 쏟아져 들어온 암울한 경제전망이다. 정권 핵심부와 글로벌 시장에서 동시에 문제가 터져 나온 ‘내우외환’에 이 대통령이 놓여 있다.
수습할 카드도 마땅치 않다. 청와대는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해 이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는 방법도 검토했으나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25일 “26일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원론적 언급은 하시겠지만 시시비비가 완전히 가려진 게 아니라서 직접적인 입장 표명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경제위기는 국제공조를 통한 대응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고, 이 대통령은 이미 주요 20개국(G20) 중 6개국 정상의 공동서한 발표를 주도했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청와대가 준비했던 하반기 국정운영 카드는 공생발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4대강 완공, 대학 구조조정과 교육개혁 등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초 구상대로 국정을 끌고 가기 어려워졌다. 국정 전면에 내세울 새로운 어젠다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출장 마지막 일정으로 시애틀에서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조찬 간담회를 가졌다. 게이츠 전 회장은 이 대통령이 2010년 자신과 나눴던 얘기를 꺼내자 “슈퍼 메모리(super memory) 대통령”이라며 “11월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에 ‘빌&멜린다 재단’의 공공부문 최고책임자 제프 램을 파견해 한국 정부와 협력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개발하지만 MS는 태블릿PC를 삼성과 협력해 개발하고 있다. 삼성은 MS의 제일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다.
만남은 예정을 20분 넘겨 80분간 이어졌고, 게이츠 전 회장은 콜라만 조금 마실 뿐 식사에 손도 안댄 채 대화에 몰두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자리를 뒤로 하고 청와대로 돌아와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부재중 상황을 보고받으며 이 대통령은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고 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