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86) 물고기 문양 국보급 분청사기
입력 2011-09-25 17:22
오는 29일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고미술품 경매회사 마이아트옥션의 가을 경매에 15세기 제작된 국보급 도자기 1점이 출품돼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분청사기조화쌍어문편병(粉靑沙器彫花雙魚文篇甁·사진)’으로 꽃과 물고기 두 마리의 문양이 새겨진 납작한 모양의 병이랍니다. 분청사기란 상감청자 전통을 이어 회청색 바탕 위에 흰색 흙을 칠한 도자기를 말합니다.
추정가 3억∼5억원에 나오는 이 도자기의 한 쪽 면에는 물고기 한 쌍이 새우를 물고 있고 다른 한 쪽 면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역시 새우를 물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로부터 물고기는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민화 등에 자주 등장하고 있지요. 분청사기에 물고기가 새겨진 것은 국보 제178호인 개인소장품과 삼성 호암미술관 및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이 전부랍니다.
게다가 물고기가 새우를 물고 있는 문양은 이번 경매에 나온 도자기가 유일하다니 국보급 명품으로 평가됩니다. 이토록 귀중한 도자기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요. 때는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남 강진이 청자의 본고장이고 경기도 광주가 백자의 본산지라면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주요 생산지는 제주였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추사 김정희도 그렇지만 조선시대 많은 관리들이 귀향을 가 정착한 제주는 그릇 등 생활용품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관계로 도예공방이 활성화됐답니다. 이 도자기도 제주에서 생산된 것으로 이 지역 유력 인사의 무덤에 함께 묻혀 있던 것을 1980년대 도굴꾼이 몰래 파낸 것이라는군요. 도굴꾼은 이를 고미술상인에게 넘기고 미술품 애호가가 다시 매입한 것이랍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도자기가 도굴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에서 압수했으나 매입자가 소유권을 두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답니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도굴품이라 하더라도 허가받은 고미술상에서 구입한 물건은 매입자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판결이 났다고 합니다. 수사 결과 도굴꾼이 붙잡혀 감옥신세를 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도굴꾼들의 수법은 가지가지입니다. 문화재청 문화재사범 단속반에 따르면 몇 년 전 한 도굴꾼은 고분 도굴이 더 이상 어려워지자 요즘 청자에 어패류를 유인하는 약물을 발라 해저에 던져두고 1년 후쯤 건져 고려청자라며 판매하다 덜미를 잡혔답니다. 역시 현대 도자기를 고분에 묻어 두었다가 몇 년 후 흙이 묻은 채로 꺼내 매매하려다 탄로 난 도굴꾼도 결국 철창행 신세를 지게 됐다는군요.
귀중한 문화재급 유물을 돈으로 환산하기는 어렵겠지만 높이 24.2㎝, 밑지름 8.5㎝인 이번 분청사기는 경매사 전문감정위원들의 시가 감정 결과 몇 억원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산됐답니다. 하지만 가격을 떠나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확인된 이 분청사기가 행여 외국인에게 낙찰돼 해외로 유출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