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최정욱] 임대주택 정책 유감

입력 2011-09-25 17:34

정부와 백성 사이의 신의를 말할 때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고사가 쓰이곤 한다. 중국 사기(史記)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오는 얘기다.

진(秦)나라의 효공(孝公) 시절 재상 상앙이 한번은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공포는 하지 않았다. 당시 백성들이 갖고 있던 나라에 대한 불신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이에 따라 나무 한 그루를 남문에 세워두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십금(十金)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며칠 뒤 상앙은 상금을 오십금으로 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나무를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이에 상앙은 즉시 그에게 상금을 주고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백성들 역시 이 일을 계기로 새 법을 충실히 지켰다.

최근 전세대란 등으로 서민들의 주거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19일 뉴타운·재개발사업 시 늘어나는 용적률의 일정 비율을 임대주택으로 짓도록 한 임대주택 의무건설 비율을 완화한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늘어나는 용적률의 50∼75% 범위 내에서 시·도 조례로 정하는 비율만큼 임대주택을 짓도록 돼 있지만, 이를 30∼75%로 완화하는 내용이다. 특히 보금자리주택지구 인근 뉴타운 임대주택은 완화된 비율의 절반까지 줄일 수 있도록 했다.

국토부는 이번 개정이 조합의 부담을 완화하고 도시재정비를 원활히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는 개발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임대주택이 필요한 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더구나 이는 지난 5월 31일 정부가 ‘2·11 전·월세시장 안정 보완대책’의 하나로 수도권 재개발사업 시 임대주택 건설비율을 전체 가구 수의 17%에서 20%까지 늘릴 수 있게 한 것과도 배치된다. 정책이 시행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이를 완전히 뒤집은 셈이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서민 주거불안을 가중시키는 국토부의 임대주택 의무건설 비율 완화 방안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줄곧 하락세를 보였던 임대주택 사업승인 건수가 올 들어 8월까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대주택 관련 정책에 일관성까지 결여됐으니 정부로서는 신의를 스스로 버린 셈이다.

최정욱 차장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