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 남몰래 방랑기(16)

입력 2011-09-25 15:20

찬양은 천사, 생활은 사탄

토요일 저녁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전도에 땀을 흘렸더니 몸은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임시전도본부로 쓰는 아파트 문을 여는데 갑자기 옆집에서, “나 죽어, 나 죽어” 하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집이었습니다.

나 예수는 혼자 사는 남자이기 때문에 부부싸움에는 잘 끼어들지 않습니다. 공연한 오해를 받으면 더 큰 일을 하려는 계획이 통째로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허지만 이번에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면 우선 살려놓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이웃들도 그 싸움 소리를 듣고 문밖에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남자 한 사람을 손짓으로 불러 함께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내가 아니고 오히려 남편이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넥타이를 꼭 쥔 채 잡아당기니까 남편은 말도 못하고 숨이 막혀가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죽는다며 악을 쓰는 건 아내입니다.

어떻든 재빨리 떼어 말렸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늦었어도 살인사건이 될 번했으니까 정말 큰 일을 한 셈입니다. 인간의 운명은 한 순간에 달렸다는 사실도 실감이 났습니다.

“그래, 잘한다 잘 해. 내가 데리고 들어온 딸이라고 대학엘 못 보낸다는 거지. 저런 못된 자식하고 재혼을 하다니 내 눈이 멀었지.....”

그러면서 아내는 엉엉 목 놓아 울었습니다.

“이 x야, 넌 내 자식 학대 안했어? 무슨 낯짝으로 대들어?”

간신히 숨을 돌린 남편의 얼굴은 글자 그대로 입에 게거품을 문 악마였습니다.

원래 그들은 어느 큼직한 교회의 찬양대 지휘자와 반주자 사이였습니다. 그만큼 음악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헌데, 기혼자인 두 사람 사이가 뜨거워졌습니다. 그러자 그 교회에서 쫓겨났고 이혼과 재혼의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허지만 미친 회오리바람 같은 사랑 앞에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기에 이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 와서 꿈같이 달콤한 살림을 차렸습니다. 게다가 이혼사실도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 어떤 교회에서 찬양대 지휘와 반주를 맡았습니다. 허지만 뜨거운 사랑은 소리 없이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나 예수와 함께 세 사람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가면서 분노가 가라앉고 부끄러움이 양심을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자님, 정말 죄송해요.”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남편으로서 가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건 저의 잘못입니다.”

싸움의 은사가 많은 곳에는 회개의 은사도 많은가 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둘 것이 있습니다. 전 남편과 전 아내도 다른 사람들과 재혼을 했다니까 결혼을 원위치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지옥에 찬양대가 있다는 말 성경에서 들어보셨나요?”

“........”

“그러면 하늘나라에는 찬양대가 있다는 걸 들어보셨나요?”

“네. ‘수많은 천군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기를’ 하는 말이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그 부부는 겁먹은 목소리로 허지만 듀엣을 하듯이 간신히 대답했습니다.

"천사처럼 찬양하고 악마처럼 생활하는 건 잘못된 결혼보다도 더 큰 범죄행위입니다. 하나님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일이니까요. 이제 인생을 새로 시작하십시오. 마음도 천사, 생활도 천사, 그래서 찬양도 천사처럼 하도록.......” 이정근 목사(원수사랑재단 대표)

이정근 목사(원수사랑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