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공포 확산] 환율 급등에… 원자재 수입 中企 “울고 싶어라”
입력 2011-09-23 21:59
경기도 남양주에서 가구업체를 운영하는 박재식씨는 23일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부터 켰다. 원·달러 환율 시세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가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파티클보드(목재를 잘게 조각내 접착제로 붙여 굳혀서 만든 것)와 중질섬유판(목질 섬유와 합성수지 등으로 제조한 판상재료) 등을 중간 수입상을 통해 구입한다. 지난주 거래업체 쪽에서 “환율이 많이 올라 앞으로 재계약하는 물량 가격을 15% 올리겠다”고 통보해 온 뒤 환율을 들여다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박씨는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당장 제품값에 반영할 수 없는 상황이라 혹시 환율이 떨어지지 않을까 매일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다”며 “생산량을 줄여서라도 재고물량으로 버텨볼 생각”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가구산업협회 관계자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에서 들여오는 목재 원자재는 관세만 15%가 넘어 안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사오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환율까지 급등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런 상태가 연말까지 지속되면 영세업체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목재·제지·섬유·플라스틱 등 원자재를 수입, 가공해 대기업에 납품하거나 직접 판매하는 중소업체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들 업체는 환율이 오른 만큼 원자재를 비싸게 구입하지만 정작 납품하거나 판매할 때는 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달 1일 1062원이던 원·달러 환율이 23일 1166원으로 무려 100원 넘게 급상승하자 손실폭만 커지고 있다.
대구 갈산동에 위치한 대아알미늄은 요즘 매일 치솟는 환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업체는 제품 생산에 필요한 알루미늄 전량을 캐나다, 호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영석 회장은 “원자재는 환율이 오르는 만큼 계속 비싸지는데 제품을 팔 때는 환율에 관계없이 같은 가격에 팔아야 하니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중소업체들은 보유자금이 넉넉지 않고 예상치 못한 환율 변동에 대한 대비책도 허술한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292개 업체를 대상으로 환위험 대비책을 조사한 결과 37.3%가 ‘없다’고 답했다. 환율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년도 경영 계획이나 공장 가동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업체도 적지 않다.
플라스틱 포장재 제조업체 관계자는 “유럽발 금융위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는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 아니었냐”면서 답답해했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엔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다. 미국, 유럽 등 우리 기업의 가장 큰 시장이 휘청거리고 있어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자제품 수출업체 관계자는 “환율이 올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고 해도 시장이 위축돼 매출이 줄면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