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철 폭로 파괴력 감안 진위 파악 불가피

입력 2011-09-23 21:49

검찰이 이국철(49) SLS그룹 회장을 예상보다 빨리 소환한 이유는 그의 폭로가 메가톤급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 진위 파악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과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입에서 여권 실세 K씨와 청와대 관계자 이름도 나왔다. 검찰은 시민사회단체가 신 전 차관을 고발할 경우 수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떠밀려 수사에 착수하는 모양새를 피하고 선제적 대응을 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 회장의 진술을 들어주는 형식을 취하면서 그의 폭로를 당분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고려도 조기 소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는 이 회장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또 다른 실세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실제로 회사를 잃은 이 회장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과장된 폭로를 하고 있다는 의심도 적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23일 “SLS조선 등의 워크아웃 과정을 조사하기 위해 이 회장을 불렀다”고 말했지만 수사의 칼날은 여권 실세에 대한 금품·향응 제공 의혹에 집중될 전망이다.

검찰은 그러나 이 회장 폭로로 촉발된 이번 수사에 큰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이 회장이 10년 동안 10억여원 이상의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한 신 전 차관이나 일본 출장 당시 5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고 폭로한 박 전 차장 모두 현 정부 집권의 일등공신이자 실세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 폭로가 사실이라면 현 정부는 치명상으로 입을 게 뻔하다. 만약 이 회장의 폭로가 진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드러나도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검찰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이 회장은 23일에도 국민일보 기자를 만나 자신의 주장이 사실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 회장은 “내가 이름을 댄 사람들이 ‘받은 것 없다’면서도 왜 나를 고소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다는 증거자료를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신 전 차관이 사용한 법인카드와 차량 대여 관련 서류 등 문건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박 전 차장과 관련된 자료도 일본에서 곧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신 전 차관 건으로의 수사 확대 여부는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다”면서 “신 전 차관을 소환할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 회장의 폭로를 확인하기 위해 신 전 차관을 소환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