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9월 24일] 일곱 번씩 일흔 번
입력 2011-09-23 17:30
찬송 : ‘아버지여 이 죄인을’ 276장(통 33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8:21~35
말씀 :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문자적으로 490번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의 제한을 두지 말고 ‘묻지마 용서’를 하라는 것이요, 분노를 안고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용서에 대한 예화로 한 임금과 만 달란트 빚진 종을 말씀하셨습니다. 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그 돈을 갚을 길이 없어 아내와 자식들 모두를 팔아야 할 처지였지만 임금이 그를 불쌍히 여기고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 소식은 복음입니다. 그런데 탕감 받은 자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나 돈을 갚으라고 하면서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임금은 화를 내며 그를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여기서 용서에 대한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 엄청난데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산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평론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이 땅의 많은 발명품 중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지우개라고 했습니다. 만일 지우개가 없었다면 데생이나 스케치가 불가능했을 것이고 많은 작곡이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컴퓨터에 지우개인 ‘del(delete)’ 키가 없었다면 컴퓨터는 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지워주셨는데 우리가 조그만 잘못을 한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이 세상을 살기 힘든 세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제력을 갖고 남편을 대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당신은 어떻게 분노를 다스리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대답을 못하다가 자꾸 물어보자 ‘화장실 청소로 분노를 푼다’고 했습니다. 그게 어떻게 도움이 되느냐고 했더니, ‘난 늘 당신의 칫솔로 변기를 닦거든요’라고 대답을 하더랍니다. 비록 앞에서 화를 내지 않더라도 어떤 앙갚음을 함으로써 풀려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는 마음속에서 화나는 사건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맡기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 용서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마음속에 분노를 담고 살아갈 때 자신의 마음이 더욱 불편할 뿐 아니라 그 분노를 통해 내 마음이 썩어 갈 수 있습니다. 훌훌 터는 방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용서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용서해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용서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는 용서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게 하실 때 비로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용서는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입니다.
존 웨슬리가 용서에 대한 설교를 했는데 한 장군이 ‘난 내게 총부리를 겨눈 그 사람만큼은 용서 못합니다’라고 했답니다. 웨슬리는 ‘장군님, 그렇다면 앞으로 당신은 죽어도 죄를 짓지 마셔야 합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기도 :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장경덕 목사(분당 가나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