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평범한 날들’… 한 순간 무너진 삶 상처 토해내

입력 2011-09-23 17:40


사고로 딸과 아내를 잃은 후 무력감에 빠져 살아가는 30대 남성, 남자친구로부터 결별을 통보받고 교통사고까지 당한 20대 여성,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를 잃고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10대 소년.

오는 29일 관객들을 찾아가는 옴니버스식 독립영화 ‘평범한 날들’의 주인공들이다. 갑자기 찾아온 사고와 사건으로 한순간에 삶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존재들인데 영화는 그들의 상실감과 상처, 슬픔을 현재와 과거, 기억 속을 오가는 구성을 통해 밀도 있게 보여준다.

첫 편 ‘BETWEEN’은 충무로의 기대주 송새벽(32)이 독립영화로는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그는 가족을 잃고 방황하는 보험설계사 한철로 나와 ‘방자전’과 ‘위험한 상견례’ 등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전매특허인 어눌한 말투와 어색한 눈빛은 코믹연기의 새로운 전형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가족을 잃고 삶의 의욕까지 꺾여버린 샐러리맨의 깊고 깊은 슬픔을 담아낸다.

두 번째 작품 ‘AMONG’은 독립영화계 스타 한예리(27)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5년을 사귄 남자친구로부터 단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받은 수공예 액세서리 디자이너 효리.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친 그녀는 고향으로 내려가 엄마와 지내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문 줄 알았던 실연의 상처는 다시 스멀스멀 살아나 그를 주체할 수 없는 울음 속으로 몰아넣는다.

마지막 작품 ‘DISTANCE’는 카페 바리스타인 수혁(이주승)의 이야기다.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수혁은 하던 일을 정리하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아버지가 어린 자기를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러 다니다 다치게 된 것에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 수혁은 해외로 떠나기 전날 할아버지를 다치게 한 책임이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그를 뒤쫓으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세 작품은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가진 각각의 단편들이지만 세 인물들의 이야기는 주제나 영화적인 장치들을 통해 중첩돼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10대, 20대, 30대로 연령대가 다르고 상실의 대상도 차이가 있지만 가슴 깊숙이 슬픔을 꾹꾹 누르고 있는 닮은꼴들이다. 근원적인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는 엔딩 장면도 비슷하다.

‘스윙 다이어리’(1996), ‘기억의 환’(2003) 등 실험적인 단편영화들을 연출했고 뮤직비디오 감독,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난(40) 감독의 첫 장편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두바이국제영화제, 올해 폴란드 오프플러스카메라국제영화제, 대만 타이페이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라동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