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 집주인의 시선으로 그린 ‘오미동가도’
입력 2011-09-22 17:37
공간空間 공감共感 / 김종진 / 효형출판
40대 영국 여인 메릴린은 자신이 사는 아름다운 시골집 주위에 거대한 철조망을 그렸다. 집 뒤에는 밝은 해가 뜨고 있는데 정작 정원 밖으로는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그녀에게 심리적 ‘감옥’을 만든 건 힘겨웠던 어린 시절과 사사건건 참견하는 엄마였다.
공간의 층위는 무궁무진하다. 메릴린의 집이 그렇듯, 공간은 인간관계이거나 행위, 추억, 혹은 경험이다. 공간은 머물거나 거닐거나 관찰할 수 있으며, 듣거나 만지거나 향기를 맡고 기억할 수도 있다.
다양한 공간 감각은 다른 문화권의 그림 속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크 앙투안 로지에의 ‘원시 오두막’과 에드워드 호퍼의 ‘빈 방의 햇빛’에서 관람자의 공간 체험은 확연하게 갈린다. ‘원시 오두막’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은 그림 속 인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지점을 향해 평범하게 이동한다. 이때 관람객은 관찰자에 불과하다. 빈 방 구석과 창의 일부만 보이는 ‘빈 방의 햇빛’에서는 관람객의 존재와 그림이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관람객 시선이 화가의 시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전남 구례의 아흔아홉 칸 대저택 운조루를 그린 ‘오미동가도’를 감상하는 재미는 한결 독특하다. 그림 속에서 한옥 지붕의 방향이 제각각이다. 산과 나무도 상단은 똑바로 섰는데 하단은 거꾸로 누웠다. 앞마당 꽃들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90도, 180도 돌려보면 이해가 쉽다. 뒤집힌 그림은 대청마루에 앉아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거주자의 시선으로 그렸다. 한 그림 속에 각기 다른 시점을 구현한 것이다. 그림 감상자가 아니라 그림 속 주인공의 삶을 배려한 그림. 그건 ‘원시 오두막’과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그러므로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은 그저 예쁜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인간관계와 인간경험을 조직하는 예술적, 사회적 행위이다. 인간 삶을 구성하는 공간의 냄새, 소리, 촉감, 기억의 세심한 결을 건축가의 시선으로 탐색한 공간 미학서. 저자는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실내건축설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