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殺身成仁
입력 2011-09-22 17:42
자기 몸을 희생해 남을 살리는 일은 대단한 결단을 필요로 한다. 분초를 다투는 사건사고 현장에서 남을 구하기 위해 제 생명을 초개같이 버릴 때에는 더욱 그렇다. 살신성인과 희생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우애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군인들 중에 이런 정신을 실천한 이들이 적잖다. 잘 알려진 인물은 강재구 소령. 그는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던 중대원이 실수로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중대원들 사이에 떨어뜨리자 수류탄 위에 몸을 날려 부하들을 살렸다. 그의 모교인 서울고 교정에는 기념비, 육사에는 동상, 산화 장소인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사득리에는 강재구공원이 들어서 있다. 육군은 그의 소속 대대를 재구대대(在求大隊)로 명명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장병 중에도 강재구 같은 군인이 있다. 1966년 해병대 청룡부대 3대대 정보참모로 파월된 이인호 소령이 주인공. 그는 월남 밀레 마을 동굴에서 베트콩이 던진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부하들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그의 군인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인호상이 제정됐다. 폭침된 천안함 장병들 구조 작업을 벌이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를 비롯해 살신성인을 실천한 군인들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다.
강재구나 이인호 같은 군인은 미국에도 있다. 지난 5월 미군 최고 영예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헨리 스벨라 일병. 그는 6·25전쟁 때인 1952년 6월 적진에서 날아온 수류탄 위에 몸을 던져 분대원들을 살리고 전사했다. 미국은 60년 만에 그의 참군인상을 기려 명예훈장을 수여한 것이다.
민간인 중에는 역내 선로에 떨어진 어린이를 구하고 자신은 두 다리를 절단한 김행균씨,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 ‘제2의 이수현’으로 불리는 이준씨 등도 잊을 수 없는 이 시대의 의인들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 주 리노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P-51 머스탱 비행기를 몰았던 지미 리워드도 살신성인의 반열에 들 만하다. 최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은 그는 추락하는 머스탱의 방향을 바꿔 가까스로 대형 참사를 막았다. 비행기가 관람객들이 모여 있는 주 관람석으로 추락했다면 200∼300명의 사상자가 생겼을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이 사고로 리워드를 포함한 9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70대 베테랑 조종사가 보여준 살신성인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