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 강남 쇼핑몰 악재 넘친 ‘변방’ 영등포에 완패 이유는
입력 2011-09-22 21:23
도시개발, 길을 잃다/김경민/시공사
한곳은 성공하고 다른 곳은 실패했다. 격차는 엄청났다. 2009년 하반기 서울에 문을 연 복합쇼핑몰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와 송파구 가든파이브(부분 개장). 이듬해 3월 타임스퀘어는 개발비에 맞먹는 6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서남부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비슷한 시기 가든파이브 입점률은 30%에 그쳤다. 유흥가와 맞붙은 열악한 환경, 꽉 막힌 도로 등 악재가 수두룩한 영등포. 외딴 입지지만 10㎞ 안팎 거리에 강남·송파·분당의 거대 중산층을 등에 업은 송파. 성패를 가른 건 입지가 아니었다.
왜 타임스퀘어는 성공하고 가든파이브는 실패했는가. 이 질문은 지난 몇 년 서울을 달군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의 진실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한국판 맨해튼’ ‘꿈의 도시’ 같은 장밋빛 전망으로 시작해 빚, 파산, 시위, 소송으로 마무리되곤 한 서울 도시개발의 민낯.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 전공교수는 작심하고 그걸 폭로할 참이다.
쇼핑몰 A, B가 있다고 해보자. 쇼핑몰 A의 개발업자 A1의 수익은 점포 분양이 끝나는 순간 실현된다. 따라서 쇼핑몰 성공은 A1의 관심사가 아니다. 분양 대신 임대를 택한 쇼핑몰 B의 개발업자 B1. 수입원이 임대료이므로 쇼핑몰 실패는 곧 B1의 실패가 된다. 유명 브랜드를 유치하고, 음식 패션 등 업종을 섞고, 쇼핑 동선을 효율적으로 조직한다. A는 우체국, 패밀리마트 등이 입점한 가든파이브. B는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CGV, 교보문고, 메리어트호텔, 루이비통, 노스페이스 등 메가 브랜드를 한데 모은 타임스퀘어다.
부동산 대세 상승기에 분양은 윈-윈 게임이었다. 대출금으로 사업을 시작한 개발업자는 건물을 짓기도 전에 분양권을 팔아 대출금을 갚고 수익을 챙겼다. 점주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프리미엄을 받고 손을 털면 그만이었다. 가격 하락기에 분양은 악몽이 된다. 분양이 어려워지면 이자 부담에 개발업자는 파산하고, 사업도 함께 전면 중단된다. 가든파이브의 실패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조작해낸 지극히 한국적 실패였던 셈이다.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와 일본 롯폰기힐 재개발 주역 모리 미노루 등은 모두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자)이다. 투자금을 모으고, 토지를 매입하고, 시공사(건설사)를 선정하고, 임차인을 구하는 것. 또 개발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떠안는 것. 부동산 개발업자의 몫이자 역량이다. 한국식 도시개발에 빠진 건 바로 ‘민간 디벨로퍼’다.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한국 대형 개발프로젝트의 디벨로퍼는 건설사, 금융사 등이 함께 출자하는 페이퍼컴퍼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업방식은 아예 소유권을 판매하는 분양이 압도적으로 많다. 실패의 리스크를 디벨로퍼 대신 분양 받는 소비자가 지는 구조인 것이다. 이 경우 디벨로퍼에게 건물이 들어선 뒤 임대가 잘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건설사라면 시공비용을 많이 받아내면 그만이다. 결국 손해 보는 건 분양 받는 일반 소비자들이다. 뉴타운 문제의 배후에도 민간 디벨로퍼의 부재, 조정 능력 없는 정부의 무능이 도사리고 있다.
책 속 화자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나는 전문가’ 톤을 벗어나지 않는다. 잰 체 한다는 말이 아니라 선험적 가치판단 대신 현미경을 들고 한 발짝씩 전진하는 관찰자의 우직함을 고수했다는 뜻이다. 오피스(용산국제업무지구), 주거(뉴타운), 쇼핑몰(가든파이브) 등 3가지 유형의 도시개발을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 한국식 시스템의 문제를 찾는 저자의 방식은 조금 복잡하고, 가끔 지루하지만 참고 읽어볼만하다. 끝없이 망하면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서울 개발신화가 궁금한 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