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부끄러운 편지 1년

입력 2011-09-21 18:52


한가위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어머니를 여의고 처음 맞는 한가위라서 조금은 부산하고 바쁘게 보냈습니다. 약국 일을 마치고 서둘러 명절 장을 보았지요. 고기를 좋아하는 조카 지민이를 위해 불고기거리를 사고, 야채주의자인 동생 진영이를 위해 싱싱한 야채도 이것저것 샀고 열심히 준비를 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아버지의 병실로 가서 준비한 음식과 마음을 나누면서 오붓한 추석을 보냈습니다.

모처럼 여유 있게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고향나들이를 마치고 각자의 일터와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달려가 안길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늘 고향인 중국으로 가고 싶다던 강 언니도 얼마 전 뿌듯한 귀향을 했습니다(2010년 12월 22일 본란 참조). 식당에서 10시간 이상 일하면서 가게 구석방에서 새우잠을 잤고, 배추농장 비닐하우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해서 모은 귀한 돈을 가지고 어머니와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갔습니다. 한국으로 시집오기 위해 진 빚도 다 갚았다며 바나나를 잔뜩 사가지고 온 강 언니는 그동안 고마웠노라고 제게 따스한 인사를 하고 귀향을 했습니다. 강 언니가 중국에 가서도 이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맺었던 소중한 인연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 봅니다.

부모님 병원비를 대느라고 고생하는 착한 영미씨는 다리를 다쳤습니다(2011년 3월 23일 본란 참조). 작고 오래된 건물들은 고쳐 쓰다 보니 이곳에는 유난히 쪽계단이 많지요. 바쁘게 그 계단들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그만 넘어져 무릎과 발목 인대가 많이 늘어나 수술을 하였습니다. 절룩거리는 발로 아침마다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오는 영미씨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아버지는 간경화를 앓고 있고 어머니는 당뇨로 인한 순환장애가 있어 두 분 모두 생활능력이 없으신데 어떻게 하나…. 지금까지는 모아 놓은 돈으로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데 앞으로가 고민이라면서 우울해하는 영미씨를 달래는 일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하루 속히 건강해지시길 바랍니다. 영미씨의 인대 치료도 잘 되어 예전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씩씩하게 ‘안녕하세요 약사 이모’ 하면서 약국 문을 밀고 들어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품어봅니다

씩씩하게 딸아이를 키우면서 살고 있는 진영씨는 올 초 미아리 집창촌을 떠났습니다(2010년 9월 8일 본란 참조). 올해 초등학생이 되는 딸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엄마라는 자리에 제대로 서기 위해 그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곳을 떠났습니다.

세상에서 딸아이와 함께 일을 하며 당당히 살기 위해 미용사 자격증도 딴 진영씨는 겁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미혼모 시설에서 예쁜 딸아이를 낳은 그녀가 처음 돈벌이를 시작한 곳이 미아리 집창촌이었습니다.

그리고 7년. 올해 스물여섯인 진영씨는 제 아들아이와 동갑입니다. 딸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잘 갔는지, 1학년 때에는 엄마가 챙겨줘야 하는 숙제도 있고 준비물도 많은데 잘하고 있는지 많이 걱정됩니다. 아마 진영씨는 잘하고 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좋은 엄마니까요.

준영이 엄마가 많이 힘듭니다(2011년 3월 31일 ‘이웃’ 참조). 올해 스물한살인 준영이가 우울증 진단을 받으면서 준영이 엄마의 눈물은 시작되었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해하는 그녀의 가슴은 검불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으나 치료받기를 싫어하는 아들과 준영이 엄마의 실랑이는 끝이 안 보이네요. 실랑이를 감당하느라 준영이 엄마가 많이 아픕니다. 준영이 엄마를 위한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곤한 삶 가운데서도 그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기를….

공장에 실습을 나갔던 재형이는 많이 힘들었는지 사흘 만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의 철없는 행동에 화가 났지만 이 작은 소동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알게 되는 귀한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세상 속으로 나아갈 아이들을 위한 기도 많이 부탁드립니다

여러분께 부끄러운 편지를 쓴 지도 이제 1년이 되었습니다. 그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제게 주시는 사람들과 그 아픔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음이 제게는 큰 기쁨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파이프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려 노력하겠습니다.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