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노석철] 어설픈 전력산업 선진화
입력 2011-09-21 21:39
민간기업은 높은 효율성을 가진 선(善)이고, 공기업은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악(惡)이라는 논리가 한때 우리 사회에 팽배했었다. 공기업은 쪼개서 민간에 팔아 시장에서 경쟁시키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로 우리 경제를 저당 잡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강요에 따른 측면도 없지 않았다.
2001년 4월 한국전력이 여러 개로 쪼개질 때도 비슷했다. 발전부문은 한국수력원자력과 5개 발전자회사로 나눠 경쟁체제로 만들었고, 전력거래소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외견상 발전회사들이 서로 경쟁하며 잘 굴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전력대란이 벌어지자 어설픈 공기업 쪼개기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력거래소는 국가대란 상황에서 어느 발전소가 고장 났는지도, 어디서 전력이 새는지도 몰랐다. 전력거래소는 허둥대고 별도 회사인 발전회사들과 손발이 맞지 않아 비상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가 전력산업 선진화의 구실로 내세웠던 효율성은 온데간데없었다.
거대 공기업을 분할해 방만경영을 없앤다는 취지도 뜻대로 됐는지 의문이다. 발전자회사들은 조직의 군살이 빠지기는커녕 고액 연봉자들이 대거 새로 생겼다. 분할로 사장 자리가 7개 늘었고, 감사와 임원들까지 더해졌다. 거기에 비서실과 감사실, 홍보실, 기획실 등 지원조직까지 똑같이 만들어졌다. 분할 후 6개 발전자회사 본사인력은 600명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건물이 비좁아지자 지원부서들은 주변 건물을 임대해 쓰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효율성이 좋아졌다는 정황은 찾기 어렵다. 발전회사들이 분할돼 구매 파워가 약해지면서 연료를 싸게 사는 것도 어려워졌다. 결국 가장 손쉬운 인원감축이 동원됐다. 현 정부 들어 발전자회사 전체 1200명 감원 방침에 따라 지난해까지 3년가량 채용이 중단됐다. 발전소 가동과 정비에 필요한 인력들이 급속히 자연 감소했다. 머리만 커지고 몸통은 허약해진 기형적인 구조가 된 셈이다. 이번 전력대란 때는 가동·정비 인력이 부족해 현장에서 큰 혼란이 벌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더구나 발전회사 사장과 감사 자리에는 전력분야를 모르는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대거 내려왔다. 한수원 김종신 사장과 남부발전 남호기 사장 정도 외에는 여권과 지연·학연 등으로 엮이거나 선거 때 MB캠프에 몸담았던 낙하산 의심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취임 초부터 노조와 마찰을 빚다가 허송세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조직 장악력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정부는 올 초 다시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발전자회사들을 ‘시장형공기업’이란 생소한 형태로 바꿨다. 현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임원 임명권만 한전에서 정부로 바꾸고, 발전회사의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했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시스템만 더 복잡해진 것 같다.
정부는 아울러 서인천·신인천 발전소를 통합하고, 6개 양수발전소를 한수원으로 통합·이관했다. 서인천과 신인천발전소는 한 곳에 있는데도 서부발전과 남부발전에 억지로 쪼개 나눠줬던 비효율의 대표적 사례였다. 정부는 중복인력과 설비 등 비효율을 제거해 연간 185억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부 논리대로라면 원자력인 한수원은 몰라도 나머지 발전회사 5개를 통합한다면 몇 배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물론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어느 방향이 맞는지 여전히 첨예한 논쟁거리다. 이번 전력대란이 누더기가 된 발전산업 구조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건 불행 중 다행이다.
노석철 산업부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