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로또’ 대입, 이대로 놔둘 건가

입력 2011-09-21 17:42


“사교육에 의존하는 논술이 수시전형을 좌지우지해 돈 없는 수험생들 울린다”

대입 재수생 A씨는 올해 수시모집 전형에서 무려 9개 대학에 원서를 냈다. 서울의 유수대학 거의 모든 곳에 지원한 셈이다. 전형료도 만만찮아 60만원 넘게 들었다. 대학별 고사(논술)는 대부분 11월 수학능력시험 이후 치르게 돼 있는데도 벌써 걱정이 태산이다. 경쟁률이 낮게는 25대 1, 높게는 50대 1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논술시험을 얼마나 잘 봐야 합격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난해 입시 때 비슷한 대학들 수시모집에 응했다가 모두 낙방한 경험이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A씨는 대학별 수시 논술시험을 ‘로또’라 부른다. 5명, 10명 뽑는데 수백명과 경쟁해야 하니 그렇게 부를 만도 하다. 지난 16일 마감한 서울 11개 주요 대학의 수시모집 지원자는 62만1647명이다. 평균 경쟁률이 지난해 27.94대 1에서 32.86대 1로 높아졌다. 수시모집 인원이 늘어난 데다 ‘물수능’이 예상되기 때문이란다. 언론들은 사상 최대 경쟁률임을 강조하며 ‘수시 전쟁’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여러 대학에 시험을 볼 수 있어 기회가 많다고들 하지만 경쟁률이 워낙 높다 보니 운에 좌우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주요 대학들이 수시 전형을 늘리는 데는 일리가 있다. 수능 성적으로 정시모집만 할 경우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수험생들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전형 방법의 다양화는 대학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이 원하는 학생을 뽑을 수 있기 때문에 윈-윈이라 하겠다. 결국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로 학생을 선발하던 1970년대로 일정 부분 되돌아간 셈이다.

문제는 대세가 돼 버린 수시모집 전형이 고교 정규 교과과정에도 없는 논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데 있다. 현재 논술을 따로 가르치는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 3학년생을 대상으로 국어시간에 짬을 내 가르치는 학교가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고교에선 수능시험에 초점을 맞춰 아이들을 가르친다. 논술을 가르치고 싶어도 능력을 갖춘 교사가 없어 못 가르치는 학교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논술은 십중팔구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재수생 A씨도 종합 재수학원에 다니지만 논술은 따로 과외를 받고 있다. 논술 수강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 서울 강남의 경우 월 100만원은 예사고,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에서도 40만∼50만원씩 한다.

논술 교육을 도외시한 고교 현실을 꿰뚫고 있는 일부 젊은 학부모들은 초중학교 때부터 논술과외를 시킨다. 영어학원, 수학학원에다 논술까지 별도로 학원에서 공부해야 하니 이런 아이들은 초죽음이다. 하지만 어쩌랴. 논술이 아이들의 지적 성장에 중요하고, 그래서 대입에 적극 반영하겠다면 초중학교 때부터 정규 교과과정에 이를 반영하는 것이 옳다. 논술이란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독서 및 독후감 작성법’이라 해도 되겠다.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 같은 곳에서는 어릴 적부터 에세이 작성 교육을 받지 않는가. 고교에서의 논술 과목 개설은 시급한 과제다.

논술 한 가지만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고교생들은 내신성적 관리와 수능시험에도 똑같은 비중으로 신경을 써야 하니 몸이 열개라도 힘들 지경이다. 학생부 전형에 대비해 3년 내내 내신 관리에 몰두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논술 좀 잘한다고 재학 중 내신을 등한시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수능시험은 수험생들에게 기본 중의 기본이다. 수시 논술 전형에도 중상위권 대학에선 수능 최하등급제가 실시되고 있고, 우선선발 제도까지 있으니 수능을 결코 얕볼 수 없다. 더구나 올해는 ‘물수능’이 예상돼 수험생들을 더 긴장하게 한다. 상위권 학생에겐 변별력이 약하기 때문에 실수는 절대 금물이다. 97점을 맞고도 1등급이 안 되는 시험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올해 ‘물수능’이 현실화될 경우 내년에 재수 및 반수생이 크게 늘 것은 명백하다. 이는 ‘로또’ 수시모집 전형의 경쟁률을 더욱 높일 것이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