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 ‘반의반값 등록금’ 내고 대학원 다니며 인맥 쌓기

입력 2011-09-21 18:20


지난해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지출 내역에는 대학원 등록금과 개인교습비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서울대 등 유명 대학은 의원들에게 큰 폭으로 등록금을 할인해 줬고, 의원들은 그나마도 정치자금으로 납부했다.

◇의원님 등록금은 반의 반값도 안 돼=한나라당 나성린 배은희(각각 비례대표) 의원은 지난해 8월 26일 나란히 서울대 공과대학 최고위과정(AIP)에 등록했다. 서울대 AIP에선 “6개월 과정의 학비는 1000만원”이라고 밝혔지만 두 의원은 150만원씩만 냈다. AIP 관계자는 “국회의원에게는 할인을 크게 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6개월의 AIP과정에는 주말 1박2일 합숙세미나, 해외 수학여행, 산업시찰 등이 포함돼 있다. 두 의원은 모두 예산결산특위 위원이다. 배 의원은 교육과학기술위 소속이고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다. 나 의원은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로 한양대 교수 출신이다. 교과위 소속의 민주당 김춘진(전북 고창·부안) 의원도 같은 시기 AIP과정에 등록했지만 자신의 돈으로 학비를 냈다.

한나라당 권영진(서울 노원을) 의원은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에 100만원, 구상찬(서울 강서갑) 의원도 연세대 연구과정에 200만원을 각각 등록금으로 냈다. 실제 등록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남경필 의원은 북한대학원대학교 등록금으로 150만원을 지출했다. 그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이다. 한 대학 최고위과정 관계자는 “교육 내용 못지않게 인적 네트워크와 명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위공무원, 국회의원 등에겐 장학금을 지급하는 게 관례”라고 전했다.

정식 학위과정 등록금을 정치자금으로 낸 의원도 있었다. 민주당 이윤석(전남 무안·신안) 의원은 지난해 연세대 경제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등록금으로 학기당 585만2000원씩 두 차례 정치자금을 지출했다. 대학원 수업 때 내는 주차요금 24만원도 역시 정치자금으로 냈다. 이 의원 측은 “경제 공부를 하려고 2009년 하반기에 입학했다”며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의정활동과 관련된 교육비 지출은 문제없다고 확인해 줬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화수(경기 안산 상록수갑) 의원도 연세대 경제학과 대학원 통상산업과에 지난해 입학했다. 등록금 696만7000원은 정치자금으로 납부했다.

◇자기계발도 정치자금으로=민주당 김재윤(제주 서귀포) 의원은 지난해 2월 16일 랜드마크포럼 참가비로 정치자금에서 100만원을 지출했다. 랜드마크포럼은 일종의 자기계발 프로그램이다. 김 의원 측은 “출판계 지인에게서 권유를 받아 등록했다”며 “선관위에 문의해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는 강의라면 정치자금을 지출해도 괜찮다는 점을 미리 확인했다”고 밝혔다.

창조한국당 유원일(비례대표) 의원의 지난해 정치자금 지출 내역에는 한 전직 아나운서의 이름이 등장한다. 유 의원은 1주일에 2차례씩 그에게서 연설·스피치 교육을 받았다. 유 의원실에선 “정치인이나 젊은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 연설 능력과 자세를 가르치는 전문 강사”라며 “모두 150만원을 교육비로 썼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이종구(서울 강남갑) 의원은 지난해 한 일본인 강사에게 900만원을 주고 일본어 개인교습을 받았다. 매달 100만원씩 정기국회가 있는 시기를 제외하고 9개월간 1주일에 2번, 한 번에 2시간씩 일본어를 배웠다. “한일의원연맹에 참여하고 있고 일본 정계에 관심이 많았는데 정기적으로 학원에 등록하기가 어려워 개인교습을 받았다”고 이 의원 측은 밝혔다.

민주당 박은수(비례대표) 의원은 일어 학원을 다녔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개최한 법률일본어 연수과정을 수강하면서 수강료와 교재비 등으로 모두 260만원을 일어 공부에 쏟았다. 이 중에는 비서관의 일어 강의 수강료도 포함돼 있다. 이 의원보다는 저렴하게 일어를 배운 셈. 박 의원실 관계자는 “장애인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일본의 사례에 관심이 많고 일본의 장애인단체와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며 “열심히 배운 덕분에 중급 실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