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석 (12) ‘존 스토트’ ‘주기도문 강해’ 읽고 용서키로 결단

입력 2011-09-21 18:06


사람들은 ‘장로’ 하면 굉장히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장로도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의 고백이다. 난 2009년에 충현교회 장로를 은퇴했다. 그런데 장로를 은퇴하고 나서 곧바로 문제가 생겼다. 2009년 초였다. 사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데없이 ‘딸을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우울증도 있고 해서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고 했다. 너무나 괘씸해서 크게 호통을 치면서도 마음 속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사위는 소위 말해 ‘일류’의 길만 밟아왔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일류 의대를 다닐 때도 늘 상위권에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얼얼한 마음에 ‘사위가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사위는 일에만 열중한 나머지 애들 교육은 물론 가정에도 신경을 못 썼다. 부인한테는 ‘집에 있으면서 왜 애들 교육도 제대로 못시키느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사위는 많이 배웠고 똑똑했지만 경쟁에 치여 마음이 황폐해 있었다. 마음속에 주님이 주인으로 앉아 계시지 않으면 만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건데 사위는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 교육을 제대로 시킬 리 만무했던 것이다. 자신은 비록 일류 학교를 졸업했을지 모르지만 자녀한테 그 전철을 똑같이 밟으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억지였다.

며칠 후 사위를 찾아갔다. 사위는 똑같은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한켠으로는 이해가 갔다. ‘자라온 환경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겠거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내가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테이블을 뒤엎어버리고 싶었다. 나중엔 마음속 분노가 얼마나 거세게 타오르든지 내 손에 권총이 있으면 쏴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로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 순간 내 속에 죄악이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느끼며 난 스스로에 대해 다시 한번 절망해야 했다. 장로이지만 성령이 다스리지 않으면 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실상을 똑똑히 목격했다.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딸 내외를 도왔다고 생각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결국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집에 있던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 그리고 ‘용서’라는 단어를 수천 번 떠올렸다. ‘정말 용서가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성적으로야 용서가 이해되지만 감정은 따라주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주기도문 강해’의 한 구절을 보며 비로소 결단을 내렸다. ‘하나님이 인간을 무조건 용서해주셨으니까 인간의 용서는 당연한 것이다. 윤리나 도덕은 결코 용서의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 아직 완전한 용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마음속 분노와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가 되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는 게 내 솔직한 고백이다.

결국 사위는 딸에게 ‘미안하다’며 이혼을 취하했다. 그리고 국내 의사생활을 접고 최근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종석 장로, 정말 잘 나가는구나. 박사학위에 외국 유학도 갔다 오고 병원도 운영하고 있지, 거기다 자녀들까지 좋은 학교 졸업시켜 잘 키우고, 큰 교회 장로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곪아 터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