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졸업식 “복음화 밀알이 되겠습니다” 다짐… 베트남 선교 100주년 비라카미선교신학대를 가다
입력 2011-09-21 00:36
지난 18일 오후 베트남 호찌민 인근 한 교회에서는 비라카미선교신학대학교 9기 졸업식이 비밀리에 거행됐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안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공산국가인 베트남에서는 허가 없이 신학교육이나 집회를 할 수 없다.
30명의 목사 후보생이 이날 졸업했다. 목회학 석사 과정이라 할 수 있는 목회자 양육과정을 마친 이들은 비라카미(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전역에 파송돼 복음을 전하게 된다.
졸업생들은 저마다 사연을 갖고 있었다. 불치의 병을 치유 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중년 가장, 두 명의 자녀를 둔 주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가정에서 박해를 받았던 처녀, 구원 문제를 교회에 다니며 해결했다는 청년 등.
이들은 졸업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종교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 복음화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을 다짐했다.
“아!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신앙정신을 따르렵니다….”
졸업생들은 ‘사명’이라는 찬양을 베트남어로 부르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졸업생 한명 한명에게 졸업증서를 수여한 학장 장요나(68) 선교사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올해로 베트남 사역 22년째인 장 선교사가 2000년 설립한 이 신학교는 복음 전파에 열정을 품은 현지인을 선발,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등을 주면서 3년간 강도 높은 신학 교육을 시키고 있다. 강사는 대부분 현지 목회자지만 한국 목회자들이 수시로 특강을 맡는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해 8회까지 433명이 졸업했다.
보통 3, 4대 1의 경쟁을 뚫고 입학하지만 졸업까지는 녹록지 않다. 이번 9기엔 30명이나 유급했다.
이날 졸업식에는 베트남을 후원해 오고 있는 국제사랑의선교회(IAF) 고문 신화석(안디옥교회) 목사가 초청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신 목사는 디모데후서 2장 1∼7절의 말씀을 인용, “복음을 전하는 자는 편안한 삶을 추구해선 안 된다”며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을 되새기고 강한 십자가 군병으로 거듭나자”고 강조했다.
졸업생 대표로 인사말을 한 후앙 앙미(28)씨는 “신학공부로 인도하신 하나님과 귀한 환경을 마련해준 신학교 관계자께 감사한다”면서 “좋은 목회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신학교에는 현지 교수 및 한국인 선교사 등 20여명이 교수로 있으며 180명의 베트남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장 선교사와 졸업생들은 한국과 미국 등 교회의 후원을 받아 165개 교회를 개척했고 11개 병원을 건립했다. 수년 내 하노이에 ‘아가페 국제종합대학교’ 설립을 목표로 전임교원 확대, 기숙사 종합병원 고아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베트남의 복음 역사는 올해 선교 100주년을 맞았다. 1911년 미국 장로교 계통(C.M.A.) 로버트 제르리 선교사가 다른 두 선교사와 함께 베트남 다낭지역에 도착, 선교활동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현재 종교는 불교가 가장 많은 60%, 가톨릭이 8%를 차지한다. 개신교는 1975년 공산화될 때 약 10만 신자였지만 지금은 1% 정도로 성장했다(현지 교계는 인구 9000만명 중 150만명으로 추정).
베트남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베트남 전쟁 후 종교활동을 금지시켰던 공산당 정권은 최근 개방화 정책과 함께 종교활동에 다소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각 종교단체는 정부와 당의 정책에 협력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특히 외국인이 베트남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행위는 절대 금하고 있으며 발각 시 추방, 벌금 등 강경 제재조치를 받게 된다. 장 선교사도 수차례 감옥을 다녀왔다.
장 선교사는 “종교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베트남에 신학교가 설립되고 이렇게 적지 않은 졸업생을 배출한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선교 2세기를 시작하는 베트남 교회가 이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후원해준 한국교회에 감사하며 아직 척박한 베트남 선교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호찌민=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