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시위대, 정부軍 기지 장악… “살레정권 붕괴 시작” 평가, 내전 본격화 우려
입력 2011-09-20 21:40
예멘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사나의 정예 군부대를 장악하면서 예멘 정국이 내전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민간 시위대를 향한 정부군의 유혈 진압도 심해져 최근 사흘 동안 사망자가 60명을 넘어섰다. 제2의 리비아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예멘 반정부세력 군기지 장악=예멘 정부군에서 이탈한 제1기갑사단 부대원과 시위대 수천명이 19일(현지시간) 사나 중심부 알주바리 대로 서부에 있는 공화국수비대 기지를 장악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목격자와 보안 관리들에 따르면 시위대는 총 한 발도 쏘지 않고 기지를 차지했다. 이들은 정부군의 총격에 대비해 모래주머니 등으로 방어하며 기지로 접근했으나 수비대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바람에 양측 간 충돌은 없었다.
알리 오센 알아마르 소장이 이끄는 제1기갑사단은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아들이 이끄는 공화국수비대와 함께 예멘군의 정예부대로 꼽힌다. 이 때문에 8개월에 걸친 반정부 시위 중에도 이곳은 정부군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AP통신은 “시위대의 군부대 장악은 살레 정권이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해석했다.
시위대 일원인 알리 알레는 “정말 믿기지 않는다”며 “무기를 가진 이는 군인이 아니라 마치 우리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무하마드 알와사비는 “살레 정권은 곧 무너질 것이다. 우리의 의지는 무기보다 더 강하다. 살레에 충성하던 군인들이 도망갔다”고 전했다.
◇유혈사태 격화=수도 사나의 다른 구역에서는 시위로 18∼20일 사흘간 최소 60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다쳤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희생자 대부분은 진압군의 로켓포 공격 등을 받은 민간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군은 건물 지붕 곳곳에 대공 화기와 로켓포, 박격포 등으로 중무장한 군인과 저격수를 배치해 비무장 시위대를 공격했다. 사망자 중에는 젖먹이와 14세 소년을 비롯해 부상자 구조에 나선 의료진 2명이 포함됐으며 카메라맨 한 명은 얼굴에 총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일부 외신은 사우디 TV방송 알이크바리야 소속 언론인 한 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당국은 사나 공항을 폐쇄했고, 착륙 예정이던 항공기 4대는 남부 아덴공항으로 회항했다. 33년째 장기집권 중인 살레 대통령은 지난 6월 대통령궁 폭격으로 다쳐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치료 중이다. 그는 연내 퇴진 방침을 밝혔다가 번복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