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장 “30년전 출연했던 ‘삼손과 데릴라’ 직접 연출하니 남다른 감회”
입력 2011-09-20 18:04
1980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대작이 무대에 올랐다. 34세의 선이 굵고 매력 넘치는 무명의 메조소프라노가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요염한 자태로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를 열창했다. 공연이 끝난 뒤 서울 주요 대학 음대는 스카우트 경쟁에 나섰다. 이듬해 그녀는 연세대 음대 성악과 교수로 임용돼 2000년까지 후학을 길렀다.
20일 서울 방배동 베세토오페라단 사무실에서 만난 강화자(66·예심교회 집사·사진) 단장은 한 세대 전으로 돌아간 소녀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30년 전 그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 그의 손끝에서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로 22∼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다.
강 단장은 숙명여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71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김자경오페라단의 ‘아이다’ 암네리스역으로 데뷔했다. 2년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돌아와 처음 선 무대가 삼손과 데릴라였다. 국내 오페라 여성 연출가 1호라는 화려한 타이틀의 주인공도 바로 그였다. 83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됐던 서울오페라단의 ‘마술피리’가 첫 연출작이다. 연출과 가수로 무대 위아래를 종횡무진 오가다 자신만의 오페라단을 만든 게 96년 베세토오페라단이다.
“이번 무대의 최고 포커스는 단연 출연진이죠. 세계 최고 테너로 꼽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강렬한 목소리 호세 쿠라가 삼손역을 맡습니다.”
강 단장은 ‘삼손과 데릴라’의 명 아리아로 세 가지를 꼽았다. 1막 ‘봄이 오면’, 2막 ‘사랑의 신이여 나에게 힘을 주소서’, 3막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다. 이 장면들은 여가수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포로가 된 삼손을 앉혀놓고 뱃노래를 부르며 펼치는 3막 광란의 파티 장면은 이 작품의 스케일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은 삼손의 엔딩신이다. 머리털이 뽑혀 힘을 잃은 삼손은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부른 뒤 온 힘을 다해 성전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그곳에 있던 팔레스타인들과 장려한 최후를 맞는다.
강 단장은 집 근처 조그마한 동네교회에 다니며 소박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대원이 10명 정도인 예심교회 성가대 지휘봉을 잡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주말 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 했지만 은혜가 넘쳤던 순간이었죠.”(1544-1555).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