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곡이 ‘金곡’… 4년간 값 최고 6배 급등
입력 2011-09-20 22:33
잡곡 가격이 금값이다. 4년여 동안 최고 496.9%나 급등했다. 웰빙 바람을 타고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 생산량은 해마다 줄고 있어서다. 쌀을 중심으로 한 농업정책이 이어지면서 잡곡 생산 기술은 상대적으로 낙후됐고, 급속히 고령화된 농촌은 손이 많이 가는 잡곡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인삼보다 귀한 잡곡=20일 서울농수산물공사 양곡시장에서 조 1㎏은 1만3000원에 거래됐다. 2007년(2178원)과 비교해 값이 약 6배로 치솟았다. 같은 기간 녹두는 7115원에서 1만7948원으로 2.5배, 팥은 4125원에서 8281원으로 2배가 됐다. 반면 쌀(경기미)은 2287원에서 2400원으로 4.9% 오르는 데 그쳤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기준으로 잡곡류(수수 조 기장 율무 메밀 귀리 등) 자급률을 26.9%로 파악하고 있다.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재배 면적과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줄면서 자급률이 낮은 것이다.
2009년과 1990년을 비교하면 잡곡 재배 면적은 45%, 생산량은 52% 감소했다. 지난해 전체 잡곡류 생산량은 2만7000t에 그쳤다. 같은 기간 인삼 생산량(2만7460t)보다 적은 물량이다. 닭고기 1㎏이 6000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잡곡은 굉장한 부가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이 오르면 값싼 외국산 잡곡을 수입해 물가를 잡는데 급급하다 보니 국내 생산 기반은 무너지고 있다. 국산 수수는 t당 1336달러에 거래되지만 인도산은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19달러에 살 수 있다. 조(국산 929달러, 중국산 253달러) 메밀(국산 1002달러, 중국산 323달러) 등 다른 잡곡도 가격 경쟁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생산 통계조차 홀대=정부는 잡곡에 대한 쓸만한 기초 통계조차 갖고 있지 않다. 통계청은 지난해 조, 수수를 조사 항목에서 삭제했다. 2009년 수수 1500t, 조 1360t이 마지막 생산량 통계다. 다른 잡곡은 기타 잡곡류로 뭉뚱그려 통계를 잡기 때문에 세부 내역을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높은 이익을 보장하는데도 잡곡 생산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그동안 펼쳐온 쌀 중심 농정의 여파라고 분석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쌀 생산기술 향상에만 매달리다 보니 잡곡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유통 구조가 정비되지 않아 잡곡 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65%에 이른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 중 35%만 농가로 돌아가는 실정이다. 또 잡곡은 소규모로 재배되기 때문에 기계화가 어렵다. 급격히 늙어가는 농촌에서 노인들이 잡곡 농사를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상황이 심각하자 뒤늦게 정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지난 5월 주요 곡물 수급안정 대책을 내놓고 2015년까지 잡곡 생산량을 3만1000t으로 늘리고, 자급률은 식용 수요의 30.4%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