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버는 것은 기술, 쓰는 것은 예술이다”
입력 2011-09-20 17:28
KAIST에 거액을 기부한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 평생 모은 재산을 과학영재 양성에 써달라며 쾌척한 마음만이 아니다. 그제 서울캠퍼스를 찾은 부부의 모습을 KAIST 측이 찍어 공개한 사진을 보면 표정도 해맑기 그지없다. 아등바등 움켜쥐고만 사는 이들에게서는 결코 없고, 오직 가진 것들을 남에게 베푸는 사람에게만 찾아볼 수 있는 순수함이다.
김병호(70) 김삼열(61)씨 부부는 2009년 8월에도 용인에 있던 300억원 가치의 부동산을 기부했다. 김삼열씨는 2년 전 남편의 기부로 IT융합센터가 착공되는 것을 보고 ‘정말 큰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 다시 기부를 결심했다. 부부가 닮는다는데, 아름다운 모습을 나눠 갖는다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평소 부모 재산은 10원 한 장 기대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은 부부의 외아들도 커피숍을 운영하며 매달 일정액을 유니세프 등에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세 사람은 1993년 시신 부족으로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서울대병원장의 말을 TV로 접한 뒤 시신기증을 약속했다.
김병호씨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우리 사회의 참된 스승이다. 17세 때 76원을 들고 상경해 음식배달 등을 거쳐 자수성가하기까지 이쑤시개를 8개로 나눠 쓰는 등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었다. 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아름다운 기부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부는 부의 존재 의미를 아는 참된 부자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이번 일이 ‘기부 바이러스’ 확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부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조천식씨는 부부의 1차 기부 뉴스를 보고 지난해 100억원을 내놨다. 이미 감염이 시작된 것이다. 자본주의를 성숙시키는 토양은 기부 문화다. 도덕적인 사회는 특히 가진 자들의 자발적인 도덕적 의무 이행을 통해 형성된다. ‘버는 것은 기술이요,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부부의 신조를 우리 사회가 음미하고 실천에 옮겨 나눔의 큰 불이 일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