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신용 강등] 獨 지멘스, 프랑스은행서 예금 인출… 뱅크런 조짐

입력 2011-09-21 00:29


유럽 은행에 위기 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지난주 신용등급이 강등된 프랑스 은행 관련 소식이 좋지 않다. 독일 최대 전자기업 지멘스는 프랑스 은행에서 돈을 빼냈다. 중국 국영은행은 프랑스 은행과 외환 스와프 거래를 중단했다. 유럽 금융위기가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과 더불어 유럽 전반으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지멘스 프랑스 은행에서 현금 인출=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멘스는 2주 전 프랑스 은행에서 현금 5억 유로를 빼내 유럽중앙은행(ECB)에 예치했다. 지멘스는 전체적으로 40억~60억 유로를 ECB에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은행의 안전성을 낮게 평가한 것이다. 유럽에선 당분간 현금 확보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이 은행에서 한꺼번에 돈을 빼내는 ‘뱅크런’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중국 국영은행인 중국은행이 외환 스와프 거래를 중단한 유럽 은행 가운데도 프랑스 은행이 다수 포함됐다. 중국은행은 소시에테제네랄, 크레디아그리콜, BNP파리바 등과의 외환 스와프 거래를 중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은행 관계자는 “지난 14일 프랑스 대형 은행 2곳(소시에테제네랄, 크레디아그리콜)에 대한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이 거래 중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이탈리아 본격 채무위기국 되나=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도 프랑스 은행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이탈리아 채권 8673억 달러 가운데 거의 절반인 3925억 달러를 프랑스 은행이 소유하고 있다.

이탈리아 신용등급 그 자체도 시장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120%로 유로존에서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지만 그동안 채무 위기 국가로 분류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공공부채는 1조9000억 유로(약 2조6000억 달러)로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의 부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시장에선 이탈리아를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아니라 구제하기엔 너무 큰 나라(too big to bail out)로 평가한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은 성추문 등으로 나라 안팎에서 신뢰를 상실했다. 그리스 제1야당인 민주당과 야권은 베를루스코니의 사임과 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탈리아의 내년 성장률을 0.3%로, 지난 6월 전망했을 때보다 1% 포인트 내렸다.

◇유럽 위기 출구가 안 보인다=유럽 재정난을 풀기 위한 근본 해결책으로는 재정 통합과 유로본드 발행 등이 거론돼 왔다. 문제는 유로존 소속 국가들의 내부 사정이 제각각이어서 의견 일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로존에서 가장 형편이 좋은 독일도 국내 반발을 두려워해 자국이 손해볼 가능성이 있는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들이 일치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게 다수 경제 전문가의 견해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