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엔 메달·KOREA엔 환호… 그들은 귀화선수다

입력 2011-09-20 21:27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다문화시대’다. 올해 이미 주한 외국인 130만명 시대를 맞았고, 주변에서는 말이 어눌하고 피부색은 달라도 같은 한국인으로써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 또한 많다. 스포츠에서도 귀화를 선택해 제2의 조국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이 늘어났다. 또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새로운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또한 눈에 띄고 있다.

#“나를 인정해주는 곳이 나의 조국”

국내 운동선수 중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의 시초는 프로배구 최고령 선수 후인정(37·현대캐피탈)이다. 후인정의 아버지인 후국기 감독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화교라서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후 감독은 자신의 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아들을 1995년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귀화시켰다. 물론 후인정도 태극마크의 꿈을 위해 기꺼이 귀화를 선택했다. 이후 후인정은 10여 년간 한국 배구의 중추적인 인물로 활약했다.

이방인의 귀화 러시는 2000년대 프로축구로부터 이뤄졌다. 1992년 러시아에서 천안 일화로 온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51)는 한 수 위의 기량으로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며 ‘신의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결국 그는 2000년 닉네임인 신의손으로 개명하고 귀화했다. 구리 신씨의 시조가 된 것은 유명하다. 신의손은 현재 대교 여자축구단 골키퍼 코치를 맡는 등 후진 양성에 힘을 쓰고 있다.

신의손에 이어 1996년 수원 삼성에 입단한 러시아 외국인 선수 데니스(34)도 2003년 시험을 거쳐 한국으로 귀화했다. 그는 귀화 당시 소속 팀이었던 성남 일화를 빗대 ‘이성남’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성남은 현재 러시아의 톰 톰스크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청소년대표팀 선수까지 지낸 이성남이 모국에서 용병 대접을 받으며 외국인 선수 쿼터제한으로 국내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이밖에 2004년에는 크로아티아 출신 싸빅(38)과 세르비아에서 온 마니치가 각각 ‘이싸빅’과 ‘마니산’이라는 한국이름으로 나란히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한·중 핑퐁사랑’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자오즈민(48)이 안재형(46)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얻은 이후 최근에는 탁구에서 중국 선수들의 귀화가 눈에 띈다. 자오즈민의 도움으로 태극마크를 단 당예서(30)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한국 대표로 출전해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다. 당예서는 귀화선수 1호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는 중국 출신 석하정(26)이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밖에 곽방방, 전지희 등 귀화 선수는 현재 우리나라 여자 탁구 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고 싶다”

최근 프로농구에서는 일반적인 한국인들과 모습이 조금 다른 선수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프로농구에서는 축구나 탁구와 같이 완전한 외국인의 귀화가 아닌 한국인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혼혈선수들의 귀화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농구에선 과거 김동광(58) 전 프로농구연맹 경기이사와 김성욱(50) 등 혼혈선수가 있었지만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녀 처음부터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달랐다.

프로농구에서는 2009년부터 시작된 귀화 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들어온 선수들이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산드린 형제 이승준(33)·동준(31) 형제는 각각 삼성과 오리온스, 토니 애킨스는 전태풍(31)이라는 이름으로 KCC에서 뛰고 있다. 이들은 색다른 모습으로 침체된 프로농구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특히 이승준은 뛰어난 외모로 소속팀 삼성의 간판으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전태풍은 뛰어난 볼 배급 능력으로 ‘태풍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문태종(36)·태영(33) 형제는 지난 7월 법무부로부터 특별귀화 허가를 받았다. 지금까지 혼혈 귀화 선수 중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에서 뛴 농구 선수는 이승준과 문태종 두 명이다. 이승준은 파워넘치는 플레이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올 하반기 대표팀에 합류한 문태종은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16년 만의 올림픽 본선무대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어머니의 나라를 선택한 선수들답게 경기 내용과 마음자세에서도 이들은 합격점을 받고 있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혼혈 귀화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허재(46) 감독은 “이승준과 문태종의 예에서 보듯 혼혈 귀화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자신의 국적을 바꾼 만큼 투지가 남다르다.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모범을 보이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