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114)

입력 2011-09-20 15:33

딸네 집에서

달포 동안 딸네 집을 다녀왔습니다. 딸들은 우리나라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큰 애는 스위스에, 작은 애는 모로코에 살고 있거든요. 스위스에 살고 있는 큰 외손녀가 네 살이라 한창 재롱을 떠는 나이입니다. 그 어미가 모로코 동생네 집으로 여름휴가를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폰으로 동영상 대화를 하는데 손녀가 말했습니다. “태수 할아버지도 이모네 집 가자!” 아이의 말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지 그만 마음이 홀딱 넘어간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긴 여행길이었습니다.

처음 한 주일 동안은 모로코의 대서양에서 아이들과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스위스 큰 딸네 집으로 넘어가 한 주간을 지냈죠. 스위스를 떠나기 전날 밤, 몽트로에 내려가서 족발요리를 먹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150근 이상의 큰 돼지를 이곳에서는 잡지 않는답니다. 20여 년 전에는 이곳에서도 우리처럼 소만큼 살찌운 돼지를 잡았다는데, 지금은 양이고 염소고 소고 돼지고 어린 것들만 식용으로 한다는군요. 마치 우리의 삼계탕 닭마냥 말입니다.

우리는 돼지의 발을 쪄서 살코기를 발라 썰어 먹지요. 그게 족발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푹 삶아서 물컹물컹하게 만들어 훌훌 빨아 먹습니다. 가뜩이나 어린 돼지의 발인데다가, 푹 삶아놨으니 얼마나 흐물흐물하겠어요. 약간의 국물도 있고 거기다가 안남미이지만 쌀밥도 나와서 모처럼 먹고 나니 배가 편안합니다. 집 떠난 이후로 여태껏 내내 파스타와 스파게티만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배도 아프고, 잇몸도 부풀고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스위스식 족발요리를 먹었더니 잇몸 아픈 거며 싸르르 싸르르 하던 배가 편안해지는 거였습니다.

‘로커보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재배한 토종식품만 소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뭐 일본의 ‘地産地消’와 비슷한 말이지요. 우리가 흔히 쓰는 ‘신토불이’라고나 할까요. 옛날 우리 조상들은 100리 밖의 음식은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토양과 환경이 다른 지역의 음식이 몸속에 들어와 해를 끼친다는 판단에서 그랬던 겁니다.

어디 입으로 먹는 음식뿐만이겠습니까. 우리가 먹는 신앙의 양식 또한 그럴 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항상 먹어야겠지요(요 6:56).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