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석 (11)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美 고교 졸업식
입력 2011-09-20 17:51
김 권사와 나 사이엔 ‘관우’라는 자녀가 한 명 있다. 그 아이가 벌써 지난 5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내와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거버너스 아카데미’(Governer’s Academy)에서 관우의 졸업식을 지켜봤다. 이 학교는 한국의 최초 유학생으로 알려진 유길준 선생이 수학한 곳이다.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학교 잔디밭은 아름다운 신록으로 짙게 덮여 있었다. 브라스밴드의 축하 연주와 1500여명 축하객들의 박수 속에 그림 같은 졸업식이 시작됐다.
인상적인 것은 교장선생이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불러내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졸업장을 주는 장면이었다. ‘홍길동 외 몇 명’ 하면서 한 사람에게만 졸업장을 주는 우리나라의 졸업식 풍경과는 너무나 딴판이었다. 한사람의 인격을 높여주고 인정해주는 모습에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말씀이 생각났다. 우리 교육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획일적 교육이라면, 그네들 교육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과 인격을 살려주는 교육이었다.
상(賞)을 주는 것도 달랐다. 우리나라는 상을 줄 때 우등상, 개근상 등으로 해서 획일적으로 주고 나면 졸업식 행사는 끝나버린다. 나는 불행하게도 이런 상다운 상을 타본 기억이 없다. 보통 음악을 잘하면 수학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을 잘하면 국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상에 태어나게 할 때는 균등하게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부여했으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공평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각 사람을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성경적으로 봐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더욱 확실하게 갖게 됐다.
그런 점에서 거버너스 아카데미 졸업식은 인상적이었다. 음악에 특출한 학생은 음악상, 운동에 특출한 사람은 운동상, 문학에 특출한 사람은 문학상을 해당 학과의 선생님이 주는 모습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관우는 사이언스(수학, 화학, 물리)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또 관우는 85명 졸업생 대표로 학부형들 앞에서 스피치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 관우가 스피치한 주 내용은 선생님들의 노고와 부모의 헌신, 그리고 동료에 대해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관우의 유창한 스피치를 들으면서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이 잔디밭 교기(校旗) 깃대 아래 둘러 모여 그 해의 일등상을 발표하는 순서였다. 금년에는 중국에서 온 학생이 뽑혔다. 그 학생은 평점이 거의 4.0에 가까웠다. 그 학생은 이외에도 여러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후문에 의하면 관우가 그 상을 못 타는 것에 대해 동료들이 매우 아쉬워들 했다고 한다. 관우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후보군에 올랐었다.
관우는 읽고 말하는 것은 물론 운동, 음악 등에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소위 전인 교육을 잘 감당해 냈던 것이다. 자기 관리를 잘했을 뿐만 아니라 후배와 동료들에게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잘 도와주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제 졸업하고 그 학교를 떠난다는 마음에 아쉬워하는 후배와 교사들의 얘기도 들었다.
부모와 떨어져 혼자 생활하면서도 이렇게 자랑스럽게 자라준 관우가 나무나 대견스러웠다. 상처(喪妻)의 아픔, 전립선암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크나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