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매뉴얼에 ‘위험 신호’는 없었다… 전력거래소 발표로 본 당시 상황

입력 2011-09-19 21:50

전력거래소는 정전사태가 벌어진 15일 사전에 대응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4시간가량 넋 놓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예비전력이 비상상황을 알리고 있었는데도 경고 발령도 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초비상상황이 되자 허둥대다 무작정 단전을 해버렸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입은 피해가 컸다.

전력거래소가 19일 발표한 정전사태 당일 시간대별 상황 자료에 따르면 첫 위험신호가 나타난 때는 오전 10시 50분. 전력수요가 갑자기 증가하면서 전력예비력은 400만㎾ 이하로 떨어졌다. 매뉴얼대로라면 비상발령 조치 4단계 중 가장 낮은 단계인 ‘관심’ 경보가 발령됐어야 했는데, 아무도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어 11시30분 예비력이 300만㎾ 이하로 떨어졌다. 매뉴얼상 두 번째 단계인 ‘주의’ 경보가 내려졌어야 하는데 이 역시 먹통이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발전소 가동이 불가능한데도 예비전력에 포함시킨 202만㎾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국의 전력이 모두 꺼지는 블랙아웃 직전 상황이었음에도 경보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인지 11시55분 이후에는 전력수요가 감소해 예비력이 회복됐고 오후 1시까지 400만∼600만㎾를 유지했다. 전력거래소가 제대로 된 조직이었다면 이때가 마지막 비상점검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온도가 올라갈 게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오후 1시5분을 넘어서면서 다시 예비력이 400만㎾ 이하로 내려갔고, 비상상황은 순식간에 닥쳐왔다. 불과 5분 뒤인 오후 1시10분에는 실제 예비력이 300만㎾ 이하로 낮아졌다. 거래소는 이때도 ‘주의’ 경보를 발령해야 하는데 가장 낮은 ‘관심’ 경보만 발령했다.

다시 15분이 지난 1시25분 실제 예비력은 200만㎾ 아래로 내려갔다. 역시 ‘경계’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10분 후 예비력은 100㎾ 이하로 떨어져 수습 불가능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전력거래소는 발전기의 발전용량과 실제 발전량 사이에 117만㎾ 오차가 있다는 사실도 그때야 알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전국의 여러 발전기가 고장 난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오후 1시55분에는 충주수력 2호기가 하류지역 민원으로 가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2시55분에는 보령복합발전소 일부가 고장으로 정지된 것을 확인됐다.

이미 순환정전이 시작된 이후인 오후 3시25분부터는 청송양수발전소 등 5개 양수발전소들마저 수량고갈로 차례로 발전이 정지됐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