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으로 못바꿔!”… 고객 20만명, KT와 신경전
입력 2011-09-19 21:54
“10년 전 연락을 하고 지냈던 거래처 담당자에게서 아직까지 011 번호로 연락이 옵니다. 17년째 써온 정든 이 번호를 절대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1994년부터 20년 가까이 2G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한 사업가는 “휴대전화는 단순한 통신수단이 아니라 인맥관리와 생계의 중요한 수단”이라며 “국민 개인의 정보를 강제로 교체하려는 정부와 일부 통신사의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010 강제번호통합정책’ 일환으로 최근 KT가 2G 서비스 종료에 속도를 내자 ‘01X(1·6·7·8·9)’ 번호를 고집하는 2G 가입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KT가 2G 서비스 종료를 위해 가입자들에게 “서비스 종료가 9월 말로 확정됐다”는 문자를 발송해 010 번호로의 전환가입을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발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01X(1·6·7·8·9) 사용자들 모임인 ‘010 통합반대운동본부’는 KT가 불법행위를 통해 2G 서비스 종료를 종용하고 있다며 지난 15일 방통위에 진정서를 접수, 결과에 따라 행정소송에 들어갈 방침이다.
방통위는 19일 전체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끝에 “KT의 2G 서비스 폐지 신청은 받아들이되 승인 여부는 최소 유예기간인 2달 뒤 KT의 이용자 보호 계획과 2G 가입자 감소 추이를 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2G 서비스 종료에 대해 조건부 승인의 입장을 밝혔다.
현재 KT에 잔류하고 있는 2G 가입자는 대략 30만명. 그러나 이 중 절반을 차지하는 15만명이 010 번호 이용자로의 가입자 전환에 반발할 것으로 예상돼 KT의 2G망 철거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0여년 전 휴대전화를 처음 구입할 때부터 018 번호의 2G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은 “하루에 70∼80통, 많게는 200통까지 통화를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번호를 바꾸기가 부담돼 2G폰을 010 번호의 3G폰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011 번호를 사용하고 있는 한 가입자는 “구형 2G폰이 사라진다기에 향후 20년 이상 사용할 물량 30대 이상을 풀 세트로 준비해 놨다”며 “어느덧 분신이자 가족이 된 번호를 위해 휴대전화 부품용의 부품폰까지 충분히 준비해 놨다”고 전환가입을 강하게 거부했다.
KT관계자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4G LTE 서비스를 위해 현재 30만 2G 가입자들이 쓰고 있는 망 철거는 꼭 필요한 조치”라며 “유한한 자원인 망의 특성과 효율성을 고려할 때 010 번호로의 통합은 더 많은 사용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지원하려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9월 현재 각각 800만명과 419만명의 2G 가입자를 지닌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아직까지 내부적으로 2G 서비스 종료시점에 대해 결정한 바 없다”며 “2G 가입자는 오랫동안 01X 번호를 사용한 충성도 높은 이용자가 많아 현재까지는 고객의 자연스런 선택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