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복권은 복권일 뿐
입력 2011-09-19 17:45
적은 돈을 투자해 운 좋게 당첨되면 거액을 만질 수 있는 복권은 역사가 깊다. 여러 설이 있지만 기원전 200년 경 중국 한나라의 키노(Keno)가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키노는 120개의 한자(漢字)를 골라 숫자 대신 사용해 이 가운데 10개를 맞추는 것으로 당첨 확률이 3535조분의 1이었다고 한다.
근대적 의미의 복권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1530년 도시국가인 피렌체 공화국이 공공사업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당첨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추첨식 복권(Lottery)을 팔았다. 이탈리아어 로또(lotto)는 ‘행운’을 뜻하는 말로 이후 복권의 보통명사로 대체됐다.
복권은 모은 자금을 공공의 복지를 위해 투자한다는 점에서 도박과는 다르지만 행운을 기대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하다. 도박을 합법화한 나라는 거의 없지만 복권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기 때문에 법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도박을 근절하기 위해 복권을 장려하는 곳도 있다.
1970년대 주택복권 한 장 값이 단돈 100원이었을 때 이를 구입하는 것이 서민들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고된 노동에 심신이 피곤하지만 주말에 돈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는 기대에 한 주가 수월하게 지나갔다. 설사 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산 복권이 나처럼 집 없이 지내는 무주택자들의 집을 짓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좋은 일 한 것 같기도 하고.
복권에는 당첨될 경우 받을 상금액에 당첨될 확률을 곱해서 계산하는 기댓값이란 것이 있다. 당첨될 확률이 다를 경우에는 그 때마다 기댓값을 합산해 총 기댓값을 낸다. 기댓값은 복권 한 장의 가격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수학적으로는 복권을 사면 무조건 손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고 내가 당첨되면 엄청난 이득이기 때문에 복권 구입행위를 무조건 어리석다고 할 수는 없다.
올 상반기 복권판매액이 1조3768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0%가량 늘었다고 한다. 로또 판매액이 1조3194억원으로 95.8%를 차지했다. 최근 몇 년간 별로 늘지 않다가 올해 갑자기 늘어났다는 것이 복권위원회의 설명이다.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희망이 보이지 않아 복권당첨을 기대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의미로 비춰져 썩 기분 좋은 뉴스는 아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여건을 개선하기가 힘들다는 의미도 된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빨리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